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고향으로 가셔서 농사를 하시겠다고 하셨다.

사실 아버지에게 도시생활은 버거움의 연속이었다.

어머니와 외삼촌들의 권유로 도시로 나오기는 하셨지만 시골에 맞춰진 삶을 도시로 맞추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런 도시생활은 언제나 아버지에게는 무게의 연속이자 벽이었다.

또한 어머니가 모든 것을 책임진 생활고를 자신이 짊어지는 것은 절박한 현실이기도 했다.

첫 농사는 아버지가 가장 자신 있어 하시던 수박 농사였다.

늘 삶은 모든 것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시련은 언제나 삶의 모퉁이에 보란 듯 있어 왔다.

그 해 수박에는 잎마름병이 돌았다.

보통은 농사를 접고 바로 다른 걸 시작했겠지만 아버지에게는 그런 여력 따위가 있을 리 없다.

그때 마침 나는 군대를 마치고 복학을 앞둔 시기라 시간이 좀 있었다.

병든 수박 줄기에 약을 바르는 아버지와 아들
병든 수박 줄기에 약을 바르는 아버지와 아들

당장 시골의 수박밭으로 갔다.

잎마름병에는 방법이 없었다.

약을 미술붓으로 발라서 물이 열매까지 잘 전달하게 하고 기다리는 방법밖에는.

잎마름병으로 수박은 줄기와 잎이 갈라지고 있었다.

하루라도 늦어지면 넓은 수박밭 전부를 잃을 때다.

정신없이 붓으로 약을 바르다 옆의 밭을 보게 되었다.

의문이 들었다.

사흘을 피죽도 못 먹은 사람같이 숨을 허덕이는 우리 밭과는 달리 옆의 밭은 싱싱한 푸른 빛이 검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옆밭은 계약농의 밭이었다.

아버지 말씀이 물을 많이 주고 약을 쳐서 이쁘게 보이려고 그런 거라고 하신다.

아버지의 말씀에는 진심이 보였다.

그랬다.

아버지는 수박에 진심이었다.

살면서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처음 보았다.

장맛비 속에서 수박을 팔러 다니는 아버지
장맛비 속에서 수박을 팔러 다니는 아버지

아버지는 늘 끝까지 하시는 일이 없고 사고 치고 깽판 치고 어딘가로 숨으면 어머니가 뒤정리를 하셨다.

그해는 운이 좋지 않았다.

몇 년 만의 장마에 출하 시기를 맞출 수 없었고 할 수 없이 아버지는 수박을 싣고 전국을 돌면서 수박을 파셨지만 역부족이었다.

수년 만의 장마로 겨우 살린 수박값이 형편없다.

아버지는 직접 차를 몰고 이리로 저리로 다니며 수박을 팔았고

아버지의 첫 농사는 본전도 보지 못했다.

그렇게 아버지의 첫 농사는 씁쓸하게 접어야 했다.

그해는 유독 비가 많이 왔다.

하지만 어머니의 죽음으로 아버지는 많은 부분이 바뀌셨다.

중간에 포기할 만도 하신데 이번에는 예전과 달랐다.

이미 나는 잎마름병이 왔을 때 아버지의 진심을 알았다.

하지만 삶은 그런 진심 따위로 우리를 평가하지 않는다.

애초에 우리를 평가하지도 않는다.

삶은 냉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