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리뷰가 아님을 미리 밝힐게요.

영화는 어렵고 지루하고 출연자는 단 2명 + 로봇 수천 대.
주인공이 이름이 있었나 모르겠네요.
아참 나중에 인간 남자 아이가 태어납니다.
로봇 마더는 인간 소녀(주인공)에게 변형된 트롤리 딜레마에 대한 문제를 계속해서 물어봅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도 자주 묻곤 하는 주제죠?
한 사람의 죽어가는 사람을 죽여 장기를 이식하면 다른 죽어가는 환자 다섯을 살릴 수 있는 문제입니다.
주인공은 로봇의 집요한 물음에도 만약에 다섯 중 살인자나 도둑 등 살면 오히려 해가 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하냐고 계속해서 묻습니다.
그러다 쥐가 전선을 끊어서 로봇 마더는 셧다운됩니다.
그 사이 주인공은 모든 시설을 복구하고 쥐는 작은 병에 가두어 마더에게 물어 보지만 인간적 지성이 없는 로봇은 쥐를 바로 불 속에 재로 만듭니다.
아참 주인공에게는 이름 대신 번호가 있었는데 1번이 아닙니다.
자신이 왜 1번이 아닌지 아니라면 다른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를 혼자 궁금해 하다가 쥐의 화형식에 의해 왜 아닌지 알게 됩니다.
그야말로 로봇은 무지성이었던 거죠.
제 생각에는 이때 이미 주인공에게는 로봇을 없애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음 마이클 샌델 교수로 잠시 넘어오죠.
샌델 교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아닌 돈으로 절대 사면 안 되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이 때쯤 샌델 교수가 이런 생각을 하는 시기가 하버드 대학생 중 기부 입학 없이도 부모가 부자인 학생의 수가 점점 늘어나서 90% 정도가 될 때쯤입니다.
그냥 가만히 두면 즉 학교가 개입하지 않으면 하위권도 아니고 중위권 포함하여 그런 학생들은 하버드에 올 수 없게 됩니다.
샌델 교수는 공정성을 해치는 것을 돈을 주고 사면 안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모 전 장관의 딸의 입학은 어쩌면 돈으로 절대 사면 안 되는 그런 것이었을 것입니다.
트롤리 딜레마는 조정간을 쥐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하든 사람이 죽습니다.
모 장관의 딸이 입학하는 순간 다른 수많은 사람은 유무형의 피해를 보게 됩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문제 바로 공정성이라는 도덕적 가치가 훼손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제 우리나라의 입시제도에 대한 신뢰성은 이전보다 훨씬 더 떨어지게 됩니다.
얼마 전 재판이 열렸었던 쌍둥이 고등학생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마더의 주인공 또한 어떻게 하든 시민 한 명 이상은 죽습니다.
트롤리 딜레마의 정답은 영화 마더의 주인공이 생각하는 것처럼 많은 사람이 사는지 적은 사람이 사는지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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