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10년을 치매와 파킨슨증으로 고생을 하셨다.
처음 요양원에 입원하시고 굉장한 차도를 보이셔서 다시 퇴원하시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작은 희망에 불과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찾아왔다.
면회는 중단되고 서로가 만날 수 없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 전에 아버지는 요양원에서 낙상을 하셨다.
낙상 후 기억력과 인지력이 극도로 나빠지셨다.
4월의 어느 날 직장에서 일을 하는 중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가 요양보호사가 안 보시는 사이에 죽을 드시다 사레가 걸렸다고 한다.
처음에는 가벼운 증상이려니 했다.
산소 포화도도 90 중반이지만 나쁘지 않은 수치이고 별다른 증상이 없었지만 요양원의 상근직 간호사의 의견은 달랐다.
노인들은 이런 사소한 일에도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으니 큰 병원으로 가시라는 것이다.
동생과 나는 바로 시간을 낼 수 없었다.
하루가 지나고 다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열이 나고 가벼운 폐렴 증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동생이 휴가를 내고 요양원으로 가려니 시간상 당장 갈 수 있는 시간이 안 되었다.
할 수 없이 다시 하루를 보내고 그다음 날 아침에 동생 집 근처에 이대 서울 의료원에 입원을 했다.

그 사이 상태는 많이 심각해져 있었다.
간밤에 고비를 넘기고 아버지는 나와 동생을 알아보시는 눈치다.
말씀을 못하신 지는 이미 오래다.
그냥 눈빛으로 서로의 마음을 보는 정도다.
첫 주는 동생이 간병을 했지만 회사를 다니는 몸이라 쉽지 않았다.
코로나로 간병인을 구하기도, 직접 간병하기도 힘들게 되었다.
병실에는 한 사람만 상주할 수 있도록 규칙이 만들어지고 코로나 확인증이 없으면
간병도 불가능했다.
한 번 나갔다 24시간이 지나 다시 들어오면 다시 코로나 확인을 받아야 한다.
그 사이 무료로 써주던 전문의 확인증은 3만 원이 되었다.
나는 프로젝트 말미라 회사를 그만두고 아버지 간병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첫날 담당의는 아버지가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이며 항생제로 겨우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하신다.
너무나 멀쩡해 보이는데 아버지가 생존해 계시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묘하다.
연명 치료는 6~7단계로 나누어져 있는데 아버지에게 항생제 투여는 그 연명 치료의 6단계인 셈이셨다.
항생제를 끊고 하루하루 숨을 죽이며 아버지를 살폈다.
너무도 건강해 보이시지만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살고 계셨다.
항생제를 끊고도 1주일을 더 사셨다.

이대로 좋아지면 다시 퇴원해서 산소호흡기라도 달고 더 사시는 건가 하는 의문이 마음을 스친다.
그리고 2주째(총 4주째)되는 화요일 아버지는 거친 숨을 쉬기 시작하셨다.
동생과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모였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다시 가족들은 병원을 나와 병원 1층 로비에 대기하고 있었다.
점점 산소 포화도 수치가 내려간다.
이제는 산소 탱크로 수명을 잡고 계시는 것이다.
내 부탁으로 간호사가 산소 수치를 최대로 하고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는 일이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순간 아버지가 편안하게 주무시는 것을 보았다.
바이탈도 다 정상이고 맥박도 느리지만 뛰고 있었다.
간호사를 불러 아버지 상태를 봐 달라고 했다.
전번처럼 다시 일어나시는 줄 알았다.
간호사는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은 것처럼 혈압을 재었고 혈압은 나오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죽음과는 다르게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모습은 너무도 편안하게 곤히 주무시는 모습이었다.
레지던트가 내려와서 심전도 검사를 하고 사망 선고를 했다.
사망 선고가 내려지고 병원 장례식장을 구하고 정신없이 3일이 지났다.
아버지와의 이별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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