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씨 병원에 정직씨와 냥이가 왔습니다.
진찰을 가장한 염탐이라고 해야 할까요?
혜원씨가 정직씨의 과거를 다 읽었으니 오히려 염탐을 당했다고나 할까요?
냥이는 여전히 관심이 없나 봅니다.
혜원씨가 귓속말로 속삭입니다.
"쟤 말할 줄 알아요."
냥이가 말합니다.
"이봐 할망구 고양이 귀를 어떻게 보는 거야.
그런 비밀을 함부로 말하면 어떻게."
놀란 건 정직씨입니다.
지금까지 혜원씨 아는 동물 중에는 호칭도 다르네요 정말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인가 봐요.
"조심해 저 할망구 남의 정기로 지금까지 사는 거야."
냥이가 정직씨에게 경고를 합니다.
정직씨가 묻습니다.
"당신 정체가 뭡니까?"
혜원이 답합니다.
"저는 조선시대 혜민서에 있던 내의녀예요.
거기서 계속 있었는데, 아무도 몰랐죠.
이 이야기는 좀 길어요."
냥이가 말합니다.
"할망구가 나보다는 한참 어리군.
나는 고려 시대 때 태어났으니 적어도 300살은 내가 오빠군."
그리고는 관심 없는 눈으로 또 낮잠을 청합니다.
정직씨는 어안이 벙벙합니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혜원이 말합니다.
"차정원씨가 아내분이죠.
옛날 상처가 잘 치료되지 않아서 장기를 누르고 있어요.
병원에 한번 데려와요."
"나쁜 짓하면 내가 가만 안 둔다."
냥이가 혜원에게 경고합니다.
"삼신 할머니의 아이들을 지키는 사람이야.
나 손 씻었다고.
누굴 정말 괴물로 만들고 있네."
그 때 철구씨가 들어옵니다.
"누나 왜 불렀어."
"정직씨라고 이 동네 주민이야.
서로 인사해."
둘은 어색하게 서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혜원이 말합니다.
"내일이나 모레 교도소 면회 한 번 가려고.
정직씨 변호사 자격도 있죠?
우리랑 같이 가요.
당신도 아는 사람일 거예요."
다음날 정직씨는 아내를 데리고 한의원을 찾았습니다.
혜원을 아직 못 믿는 냥이도 같이 따라왔습니다.
혜원은 원래 상처투성이인 정원의 몸에서 이곳저곳 상처를 치료했습니다.
냥이는 관심 없는 듯하지만 자는 척 실눈을 뜨고 그 과정을 조심스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정말 그들은 면회를 갔습니다.

물론 정직씨가 잘 아는 사람입니다.
정원씨의 이전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인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혜원을 보자 기겁을 했습니다.
그리고 간수를 불렀습니다.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시간이 멈춘 듯 아주 천천히 시간이 흘렀습니다.
혜원은 천천히 다가갔습니다.
"오랜만인데 이러면 너무 서운한데."
모든 사람이 멈춘 듯 꼼짝도 안하지만 네 사람의 시간은 흐르고 있었습니다.
혜원은 그 사람의 팔을 잡았습니다.
어제 정원에게 받은 각종 고통을 그 사람에게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당신 전처에게서 받은 선물이야.
받아 둬."
철구가 혜원의 손목을 잡았습니다.
"누나.
정원씨를 고친 거야, 이 사람을 벌주려고 고친 거야?"
"이 사람이 만든 고통이야."
"그래도 누나가 어디까지 돌려줄지 혼자 정하면 안 돼."
혜원은 손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받아 온 통증이 아직 몸에 남아 있었습니다.
철구도 그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모른 척해서 편했던 것도 맞아.
이제는 안 할 거야."
혜원은 그 사람의 팔에서 손을 뗐습니다.
그리고 넷은 말없이 면회장을 나왔습니다.
오는 길은 차가 많이 막혔습니다.
혜원은 옆구리를 누른 채 창밖만 보았습니다.
정직씨가 물었습니다.
"그 혜민서 이야기는 뭡니까?"
혜원은 그때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이 나라 백성들이 가장 불행할 때 태어났어요.
먹을 것이 없어서 병든 할머니도 죽여서 먹던 끔찍한 세상이었어요.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불사의 몸을 가지고 태어났고, 혜민서 앞에 버려졌어요.
하지만 그때는 내 능력을 잘 못 쓰던 때였어요.
난 혜민서의 궁녀로 계속 그곳에 있었는데, 사람들은 나를 기억하지 못해요.
내가 그들의 기억을 모두 빼앗았거든요.
나는 병들어서 혜민서에 버려진 사람들의 생명을 먹고 지금까지 살 수 있었어요.
그 환자들은 고통이 삶보다 더 무서운 사람들이었어요.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양반들을 피해서 산속으로 숨어 들어가는 사람들로 넘쳐났고, 탐관오리들의 착취가 극에 달한 시기였거든요.
곧 조선이 망할 걸 알고 있었어요.
그때 삼신 할머니가 나에게 와서, 내 능력으로 사람을 고치는 방법을 알려 주셨어요.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그 일을 하는 거고요.
지금은 그 일을 좀 더 합법적으로 하려고 철구가 내 일을 돕고 있어요."
"그럼 냥이는 어떻게 알죠?"
정직씨가 물었습니다.
"냥이도 나랑 같이 삼신 할머니의 아이를 돌봐요.
하지만 미물이라 제 몸 간수도 못하죠.
고려 때 왕자였나 봐요.
그는 윤회의 몸이에요.
죽어도 죽어도 다시 살아나요.
어쩌면 정직씨가 그 고양이를 구하고 윤회의 저주를 멈출지 모르겠어요."
혜원의 이야기가 끝나고 아무도 말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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