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김 비서가 호텔 로비에서 현철 씨를 기다렸습니다.

현철 씨는 받아 입은 정장이 어색했습니다.

손은 장갑 안에 넣어 두었습니다.

맨손이 사람을 스치면, 그때의 일이 다시 시작될 것 같았습니다.

"부사장님, 차로 모시겠습니다."

회사 집무실 옆의 작은 방에서 현철 씨는 하루의 일을 들었습니다.

용역이 사라진 현장은 한곳이 아니었습니다.

그중 실내 페인트를 하던 현장이 멈춘 지 오래였습니다.

일하던 사람들이 나오지 않았고, 식당 이권은 다른 업체가 이미 기웃거리고 있었습니다.

현철 씨는 그 현장의 이름을 듣자 장갑 낀 손을 무릎 위에 올려 두었습니다.

"그 팀 십장님은 어디에 있습니까."

"병원입니다. 맞은 뒤로 퇴원을 못 하고 있습니다."

현철 씨가 회장에게 들어갔습니다.

"그 현장은 제가 알던 곳입니다.

십장님이 저를 일 시켜 주신 분입니다."

회장은 창밖을 보다가 돌아섰습니다.

"사람은 더 죽이지 마시오.

이제는 회사의 일이오."

"십장님은요."

"그분은 내가 보겠소.

당신을 숨겨 준 사람이니, 그 빚은 회사가 집니다."

오후에 현철 씨와 김 비서는 병원으로 갔습니다.

십장 아저씨는 혼자 쓰는 병실이 아니었습니다.

커튼 너머로 다른 환자의 숨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저씨는 현철 씨를 보고 한참을 말이 없었습니다.

"야.

정장 입고 어디 갔다 온 거야."

"회사에서 왔습니다."

"회사?"

"회장님이 저를 쓰십니다.

아저씨 병원비는 그분이 내신다고 했습니다."

아저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나 같은 사람 병원비를 왜 내. 용역 놈들은."

"그 사람들은 없습니다."

아저씨의 눈이 흔들렸습니다.

현철 씨는 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저녁, 회장이 병실로 왔습니다.

양복 차림이었고, 수행원은 김 비서뿐이었습니다.

커튼을 천천히 쳤습니다.

"일을 가르쳐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아저씨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다 말았습니다.

"현철이가 뭘 잘못한 겁니까."

"잘못한 게 아닙니다.

페인트는 아저씨 팀이 그대로 하십시오.

식당 이권은 빼겠습니다.

반으로 나눌 사람도 없습니다.

밀린 품값은 회사가 채워드리겠소.

다치신 동안의 날도 넣어서."

아저씨는 현철 씨를 보았습니다.

"너, 그 사람들 건드린 거냐."

현철 씨는 장갑을 낀 채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회장이 대신 말했습니다.

"산 사람은 현장으로 돌려보내겠습니다.

오늘은 쉬십시오."

아저씨는 대답 대신 현철 씨의 장갑 끝을 잠깐 잡았습니다.

현철 씨는 손을 빼지 않았습니다.

장갑이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병실에서 정장에 장갑을 낀 남자가 붕대를 감은 아저씨 곁에 있고 뒤에 양복 차림의 두 사람이 서 있는 장면
병실에서 정장에 장갑을 낀 남자가 붕대를 감은 아저씨 곁에 있고 뒤에 양복 차림의 두 사람이 서 있는 장면

회사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현철 씨가 말했습니다.

"중간 보스는 뉴스에 나왔습니다.

나머지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사무실에 그대로 있습니다."

김 비서가 백미러로 뒤를 보았습니다.

회장은 이미 알고 있다는 얼굴이었습니다.

"알고 있소.

죽인 사람을 방에 둔 채 회사를 열 수는 없소.

오늘 밤에 수습합시다."

"제가 갔던 방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가시오.

절은 나중에 하시오."

밤이 깊어서 그 건물에 불이 남은 층은 거의 없었습니다.

용역 사무실은 복도 끝에 있었습니다.

문은 안에서 잠긴 채 몇 달을 그대로였습니다.

김 비서가 문을 열었습니다.

현철 씨는 문지방에서 멈추었습니다.

기억은 회장이 걷어 가서, 방 안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남은 것은 뼈뿐이었습니다.

김 비서가 낮게 말했습니다.

"부사장님. 들어가지 않으셔도 됩니다.

수습은 제가 하겠습니다."

"아니요.

제가 두고 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천으로 하나씩 쌌습니다.

이름을 다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회사 장부에는 팀장과 몇 사람의 이름만 적혀 있었습니다.

나머지는 일당으로 불리다가 그 밤에 끝났습니다.

차는 시내를 빠져 회사가 가진 야산으로 갔습니다.

묘자리는 하나였습니다.

회장이 말했습니다.

"갈라 묻으면 이름이 없는 사람은 빠집니다.

같이 묻으시오."

김 비서와 따라온 두 사람이 구덩이를 덮었습니다.

그 앞에 낮은 상을 차렸습니다.

밥과 국, 마른 생선, 술 한 잔이었습니다.

현철 씨는 장갑을 벗을까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회장이 잔을 따라 상 앞에 놓았습니다.

"절은 당신이 먼저 하시오."

현철 씨가 엎드렸습니다.

이마가 흙에 닿았습니다.

두 번째 절에서 그가 말했습니다.

"제가 죽였습니다."

바람만 불었습니다.

회장이 그 옆에 서서 절했습니다.

밤 봉분 앞 제사상에서 장갑 낀 남자가 엎드려 절하고 양복 입은 남자가 고개를 숙이는 장면
밤 봉분 앞 제사상에서 장갑 낀 남자가 엎드려 절하고 양복 입은 남자가 고개를 숙이는 장면

"이 사람들은 회사의 일로 움직이다가 죽었소.

산 사람은 내일 현장으로 가고, 죽은 사람은 여기에 둡니다.

그게 오늘 당신이 할 일이오."

술이 흙에 스몄습니다.

상은 걷혔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말이 없었습니다.

다음 날, 페인트 현장의 출입문이 다시 열렸습니다.

십장 아저씨는 붕대를 감은 채로 팀 앞에 섰습니다.

식당 쪽을 기웃거리던 사람들은 회사 이름이 붙은 계약서를 보고 물러났습니다.

현철 씨는 차 안에 앉아 그 문을 보았습니다.

현장에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김 비서가 말했습니다.

"회장님 말씀대로, 사람은 더 늘지 않았습니다."

현철 씨는 장갑을 고쳐 끼웠습니다.

야산의 묘는 비석도 없이 흙만 봉분으로 남았습니다.

그 봉분 앞에서 올린 술이, 현철 씨가 회사의 일로 처음 끝낸 제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