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철 씨는 회장의 서재로 불려 갔습니다.

벽에는 오래된 초상화가 여러 점 걸려 있었습니다.

얼굴은 달랐습니다.

옷의 시대도 달랐습니다.

여자와 아이들이었습니다.

서재 벽에 여러 시대의 초상화가 걸려 있고 양복 차림의 두 남자가 그림을 보는 장면
서재 벽에 여러 시대의 초상화가 걸려 있고 양복 차림의 두 남자가 그림을 보는 장면

"저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아내요.

아이들이오.

시대마다 다른 사람이오."

회장은 그림 아래를 보다가 말했습니다.

"다들 축복이라고 하더군.

오래 살고 싶어들 하니까."

현철 씨가 물었습니다.

"축복이 아니었습니까."

"먼저 보내는 일이 축복이오?

나는 한 번도 먼저 가지 못했소."

회장은 창가로 갔습니다.

"임진왜란 때도 돌아왔소.

일본에서 겪은 전쟁 때도 그랬소.

나가사키의 불길 속에서도 죽지 못했소.

육이오도, 베트남도 그렇소.

그때마다 이름과 신분을 바꿨소.

결혼도 여러 번 했소.

남은 사람은 없소.

모두 나보다 먼저 갔소."

현철 씨는 장갑 낀 손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이 회사를 만드신 겁니까."

"이름을 바꿀 때마다 빈손이 되었소.

다시 모은 것이 이 회사요.

그러나 회사를 끝내려고 당신을 부른 게 아니오."

"그럼 무엇을 끝내시는 겁니까."

"이 외로움이오.

꼬마 고양이를 찾아 원래대로 돌려놓으면, 끝날지도 모르오.

한의원에서 당신이 봤던 그 고양이요.

오른쪽 눈을 감고 있던 아이요."

현철 씨는 그 한의원을 떠올리고 얼굴이 굳었습니다.

"그곳으로 가라는 말씀입니까."

"당신이 가기 싫다는 건 알고 있소.

찾는 일만 도와 주시오."

회장이 돌아서서 현철 씨를 보았습니다.

"부하들에게 술법을 심어 두었소.

누군가 그들의 기를 빼앗으면, 내가 알게 했소.

옛 악이 나타나면 잡으려고 친 그물이오."

"그 살인귀를 처리할 때 말씀하신 것입니까."

"그렇소.

그날 밤 그물이 흔들렸소.

걸린 것은 그 악이 아니었소.

당신이었소."

현철 씨는 장갑 위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제가 그 사람들을 없앴습니다.

기억이 밀려들어서, 머리가 터질 것 같았습니다."

"알고 있소.

살인귀의 나쁜 기운이 당신을 덮친 걸 알고, 내가 걷어 낸 것이오.

그 기운을 거슬러 올라갔소.

끝이 한의원이었소.

거기 그 고양이가 있었소.

그래서 김 비서에게 모셔 오라 했소."

현철 씨가 물었습니다.

"그 집 사람이 순순히 줍니까."

"모를 일이오."

그 시각, 정직 씨의 집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문을 열자 김 비서가 서 있었습니다.

키도 크고, 어깨도 넓었습니다.

뒤에는 수하가 셋이었습니다.

"박정직 씨입니까.

고양이는 회장님께서 찾습니다."

정직 씨는 문틈을 몸으로 막았습니다.

검은 고양이는 그의 다리 뒤에 있었습니다.

"내 고양이야.

돌아가."

김 비서가 안으로 발을 들였습니다.

정직 씨의 주먹이 먼저 나갔습니다.

앞의 수하 하나가 벽에 부딪혔습니다.

나머지는 양쪽에서 팔을 붙잡았습니다.

정직 씨는 거구였습니다.

한 사람을 떼어 내고, 김 비서의 명치를 쳤습니다.

김 비서는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무술로 단련된 팔이 정직 씨의 손목을 꺾었고, 어깨가 바닥으로 내려갔습니다.

정직 씨는 다시 일어났습니다.

"고양이는 안 돼."

수하 둘이 다리를 걸었습니다.

김 비서의 손이 목덜미를 내리눌렀습니다.

정직 씨는 고양이를 등 뒤로 가리려다, 무릎부터 꺾였습니다.

의식이 끊겼습니다.

고양이는 그 가슴 위로 올라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김 비서가 손을 뻗자 고양이가 이를 드러냈습니다.

"억지로 떼면 다칩니다.

회장님께 보고드리겠습니다."

수하들이 쓰러진 정직 씨를 벽 쪽으로 눕혔습니다.

그들은 고양이를 두고 집을 나섰습니다.

얼마 뒤 혜원이 왔습니다.

정직 씨는 아직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혜원이 그의 손목에 손을 얹었습니다.

기억이 올라왔습니다.

문을 연 얼굴, 주먹, 김 비서의 말, 그 옷깃의 회사 배지였습니다.

가해자가 남긴 고통 속에, 찾아갈 곳이 들어 있었습니다.

"정직 씨, 여기 있어요.

고양이는 내가 데려갈게요."

정직 씨가 눈을 떴습니다.

"같이 갑니다."

그는 벽을 짚고 일어섰습니다.

혜원은 검은 고양이를 품에 안고 그 회사로 갔습니다.

문이 열렸을 때, 팔 안에 고양이를 안은 사람은 김 비서가 아니었습니다.

현철 씨는 한 발 물러섰습니다.

혜원을 아직 악마로 기억하는 몸이었습니다.

회장이 일어섰습니다.

"당신이 데려왔소."

"정직 씨가 쓰러져 있었어요.

그 기억에 이 회사 배지가 있었어요."

혜원의 뒤로 정직 씨가 들어왔습니다.

혜원이 고양이를 내려놓자, 고양이는 정직 씨의 곁으로 갔습니다.

정직 씨가 회장을 보았습니다.

"당신도 이 아이를 지켰다면서요.

그런데 왜 이 아이가 아끼는 사람을 때립니까."

회장이 고양이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고양이는 정직 씨 곁에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다시 잃을까 두려웠습니다."

"그럼 나한테 물었어야지."

고양이가 말했습니다.

회장의 손이 내려갔습니다.

한참 뒤 고양이가 앞으로 걸었습니다.

"만나고 싶었어.

그래도 오늘은 저 사람들과 돌아갈 거야."

회장은 길을 막지 않았습니다.

고양이가 책상 위로 올라갔습니다.

회장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고양이가 그 손등에 이마를 댔습니다.

서재 책상 위에서 눈을 감은 검은 고양이가 양복 입은 남자의 손등에 기대고 머리 묶은 여자와 장갑 낀 남자가 옆에 있는 장면
서재 책상 위에서 눈을 감은 검은 고양이가 양복 입은 남자의 손등에 기대고 머리 묶은 여자와 장갑 낀 남자가 옆에 있는 장면

현철 씨는 숨도 쉬지 못했습니다.

천 년 만의 재회였습니다.

그러나 이마가 닿았을 뿐, 둘의 몸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회장은 아직 몰랐습니다.

절대악이 열쇠라는 것을.

그 열쇠가 있어야 몸과 고양이를 바꾸고, 평안히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손등의 온기만 가만히 받았습니다.

"찾았소."

현철 씨가 물었습니다.

"그것만으로 끝이 납니까."

회장은 고양이를 보며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끝이 나려면 무엇이 더 있어야 하는지, 그도 몰랐습니다.

"모르오.

다만 이 아이 없이 끝낼 수는 없소."

고양이는 오래 손등에서 이마를 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정직 씨에게 돌아갔습니다.

서재의 초상화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