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패전의 땅

거대한 짐승이 양들을 지나쳐 마리 루를 공격한다.

양들 속 침묵 삽화
양들 속 침묵 삽화

소를 빼앗긴 다음 날, 마리는 빈 앞치마를 접어 들고 집을 나섰다. 시어머니 아델은 텅 빈 우리에서 짚을 걷어 내고 있었다. 짚을 치운 뒤에도 소가 누웠던 자국은 선명하게 남았다.

“해 떨어지기 전에 오너라.” 아델이 말했다.

“빵집에 다녀올게요.”

빵집 여자는 약속대로 남겨 둔 빵 껍질을 내주었다. 마리는 그것을 앞치마에 싸서 집으로 돌아갔다. 마을 어귀에는 산에서 내려온 양 떼가 길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목동은 산에서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끼고 예정보다 하루 일찍 양들을 우리로 데려가는 중이었다. 양들이 일으킨 먼지가 무릎까지 차올랐고, 목에 단 방울은 저마다 다른 소리를 냈다. 마리는 양 떼의 가장자리를 따라 걸었다. 지친 양들은 마주 오는 마리를 보고도 길을 비키지 않았다. 털에는 풀씨가 잔뜩 붙어 있었고, 다리를 저는 양도 있었다.

그때 양 떼 한가운데가 갈라졌다.

그런데도 양들은 놀라 달아나지 않았다. 포식자가 나타났다면 방울이 한꺼번에 울리고, 양 떼가 담을 넘듯 한쪽으로 밀려야 했다. 하지만 방울 소리는 오히려 잦아들었다. 양들이 좌우로 한 걸음씩 물러나며 좁은 길을 냈다. 그 사이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짐승이 걸어왔다. 양의 등보다 훨씬 컸지만, 먼지에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넓은 어깨와 성큼성큼 내딛는 다리만 보였다. 돌을 밟을 때마다 묵직한 소리가 났다. 어린 양 한 마리가 코앞에 있었지만 짐승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마리는 빵 껍질 보따리를 가슴에 꼭 안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양들은 자신들 사이를 지나온 짐승의 곁에서도 태연히 서 있었다.

“피에르.”

마리가 피에르를 부른 것인지, 놀라서 숨을 내쉬다가 저도 모르게 이름을 뱉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피에르는 담 아래 도마에서 장작을 패고 있었다. 전날 닦아 둔 나팔총은 문설주에 걸려 있었다. 그는 마리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총을 집어 들었다. 총에는 녹이 남아 있었지만 화약과 납은 채워 둔 상태였다. 전쟁터에 나가지 못한 피에르가 가진 유일한 무기였다. 그는 양 떼를 향해 총구를 들고 골목을 내달렸다.

피에르의 눈에는 짐승의 등만 보였다. 흙빛 먼지 사이로 넓적한 등이 드러났고, 그 아래로 마리의 앞치마가 쓰러졌다. 짐승의 얼굴도 발톱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피에르는 양의 머리를 맞히지 않을 만큼만 총구를 낮춘 뒤 방아쇠를 당겼다.

나팔총은 멀리 있는 표적을 맞히는 총이 아니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납 조각이 넓게 퍼져 나갔다. 놀란 양들이 비명을 질렀지만 총에 맞은 양은 없었다. 먼지가 크게 솟구치더니 그 안에서 짐승의 등이 옆으로 돌아섰다. 피에르에게는 총을 다시 장전할 틈이 없었다. 그는 빈 총을 쥔 채 달려갔다. 그사이 짐승은 이미 양 떼를 벗어나고 있었다. 총에 맞아서 달아나는지, 마리를 죽였으니 볼일을 마치고 떠나는지 알 수 없었다. 짐승이 산으로 사라진 자리에는 먼지만 남았다. 양들은 다시 고개를 숙였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풀을 뜯는 놈도 있었다.

마리는 길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풀어진 보따리에서 쏟아진 빵 껍질이 피에 젖어 갔다. 목과 옆구리는 크게 찢겨 있었다. 피에르는 앞치마로 상처를 가리려 했지만 천이 턱없이 모자랐다. 마리는 숨을 두 번 더 내쉰 뒤 죽었다. 피에르를 알아보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먼지가 눈에 내려앉기도 전에 이미 눈동자는 초점을 잃었다.

“마리.”

대답은 없었다. 목동은 손에 들고 있던 방울 끈을 내던지고 달려왔다. 앞치마 아래의 상처를 본 그는 놀라 뒤로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오랜 습관대로 양의 수부터 세었다. 쓰러진 양은 한 마리도 없었다. 총알이 스친 양 한 마리의 털만 조금 뜯겨 있었다.

“양은 건드리지도 않았습니다.” 목동이 말했다. “양들이 더 가까이 있었는데도요.”

피에르는 대답하지 못했다. 손에는 화약 냄새가 배었고 총구는 아직 뜨거웠다. 피에르가 마리의 머리와 어깨를 받치고, 목동과 빵집 여자가 허리와 다리를 나누어 들었다. 세 사람이 걸음을 맞췄지만 집에 닿기까지 몇 번이나 쉬어야 했다. 옮기는 내내 마리의 한쪽 손이 힘없이 흔들렸다.

아델은 아직 짚을 팔에 안은 채 우리 문간에 서 있었다. 사람들이 마리를 집 안으로 데려오는 모습을 보자, 안고 있던 짚이 발등 위로 쏟아졌다. 아델은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선반에서 사발을 꺼내 씻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대신 끈이 끊어진 보따리 곁에 앉아, 피에 젖은 빵 껍질을 하나씩 주워 앞치마 위에 올려놓았다.

“해 떨어지기 전에 오라고 했는데.” 아델이 말했다.

피에르는 나팔총을 문설주에 다시 걸었지만 한동안 손을 놓지 못했다. 골목에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나 대부분 산 쪽만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짐승의 공격을 받지 않은 양 떼는 곧 평소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부가 왔다. 그는 시신의 얼굴을 닦고 목의 상처를 천으로 가렸다. 가리고 나서도 천은 바로 젖었다.

“늑대입니까.” 빵집 여자가 물었다.

신부는 젖은 천 위에 새 천을 한 겹 더 덮었다. “늑대였다면 양부터 물어 갔을 겁니다. 나도 발자국을 보지 못했습니다. 등을 봤다는 사람도 먼지 너머로 얼핏 봤을 뿐이고요.”

피에르는 자신이 본 것을 더 말하지 않았다. 넓적한 등과 양보다 높은 어깨, 양들을 비켜 가며 마리에게 곧장 다가간 짐승. 그것을 입 밖에 내는 순간 마을 사람들이 총을 들고 산으로 올라갈 것 같았다. 쓸 만한 총은 한 자루뿐이었고, 그마저 지금은 비어 있었다. 피에르는 화약통을 찾아 뚜껑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사람들은 마리를 식탁 옆, 돌아오지 않은 아들을 위해 비워 둔 자리에 눕혔다. 아델은 그 곁에 앉았다. 사발을 엎어 두지도 않았고, 교회 나무판에 마리의 이름을 적으러 가지도 않았다. 『장』은 아직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마리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분명히 숨을 거두었다.

밖에서는 목동이 양을 세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세 번을 세어도 없어진 양은 한 마리도 없었다. 사람들은 골목에 흘린 피를 모래로 덮었다. 산으로 향하는 길은 어제처럼 어두워졌다. 다만 오늘은 그 길로 정체 모를 짐승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피에르는 문 앞을 지키며 밤을 새우기로 했다. 빈 나팔총을 무릎에 올려놓고 집 안의 촛불이 흔들리는지 살폈다. 장례는 이튿날 치를 예정이었다. 마리의 시신은 집 안에 누워 있었고, 양들은 우리에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