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 북쪽, 열 해

왕자가 왕국을 떠난 지 열 해 뒤, 북쪽 요새에 코끼리가 도착한다.

코끼리가 오는 밤 장면을 인도 세밀화풍으로 그린 삽화
코끼리가 오는 밤 장면을 인도 세밀화풍으로 그린 삽화

아린드라 왕자가 왕국을 떠난 지 열 해가 지났다. 그가 지도에 찍어 두었던 북쪽 나루는 이제 적의 길이 되어 있었다.

말라바 북쪽 변경의 작은 요새에 처음 도착한 것은 군대가 아니라 먼지였다. 성루의 병사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을 때, 먼지 아래에서 둥근 등이 움직였다. 열두 마리의 코끼리가 간격을 두고 걸어오고 있었다.

망을 보던 병사는 종을 세 번 치고 한 번 쉬었다. 기병이 아니라 큰 짐승이라는 신호는 따로 없었다. 당직 장교가 올라와 손차양을 했다. 바람이 바뀌자 마른 풀 냄새와 함께 짐승의 축축한 냄새가 성벽까지 밀려왔다. 성 아래 나루에서는 뱃사공들이 밧줄을 끊고 마지막 배를 남쪽 물살로 띄웠다.

“밧줄을 내려라. 아이부터 올린다.”

성벽의 도르래가 삐걱거렸다. 올라온 사람은 열일곱이었고, 문밖에 남은 사람은 그보다 많았다. 먼지가 강둑을 덮기 전에 밧줄을 거두어야 했다.

후나계 군벌의 수장 바흐람은 북서쪽의 여러 세력이 다투는 동안 자기 군대를 모았다. 그의 진영에는 먼 초원에서 온 기병도, 오래전부터 인도에 살던 창병도 있었다. 빚 때문에 고용된 병사들이 다른 말로 욕을 하며 같은 물통을 돌렸다. 바흐람이 원하는 것은 여왕의 왕관보다 먼저 다샤푸라의 곡식과 통행세였다.

그는 포로로 잡은 관리에게 성문 앞에서 외치게 했다.

“문을 열면 목숨을 보전한다.”

관리의 입술은 터져 있었다. 그는 같은 말을 두 번 외친 뒤 성 위를 올려다보았다. 자기 이름을 말할 기회를 기다리는 눈이었다. 지휘관은 활을 내리게 했다. 포로를 쏘지 않는 것이 구할 방법은 아니었으나, 바흐람의 말을 대신했다는 이유로 죽이지는 않으려 했다.

성 안의 지휘관은 대답 대신 봉화를 올렸다. 바흐람은 더 기다리지 않았다.

첫 공격은 실패했다. 마른 해자에 박아 놓은 말뚝 때문에 코끼리가 멎었다. 성 위에서 돌이 떨어졌고, 한 기수가 어깨를 맞아 내려왔다. 바흐람의 공병들이 방패 아래로 들어가 말뚝을 뽑고 흙자루를 던졌다. 밤새 해자의 한 부분이 메워졌다.

성 안에서도 아무도 자지 못했다. 대장장이들은 화살촉을 다시 펴고, 부엌 사람들은 물에 소금을 풀어 성벽으로 날랐다. 다친 병사는 자기 몫의 물을 마시지 않고 해자 쪽을 가리켰다.

“저기, 같은 곳만 메웁니다.”

지휘관은 횃불을 가리게 했다. 어둠 속에서 흙자루가 떨어지는 둔한 소리를 세어 보니 공격로는 하나가 아니었다. 적은 가장 깊은 곳을 메우는 척하며 문 가까운 말뚝부터 뽑고 있었다. 성 안의 돌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는 돌을 두 군데로 나누라는 명령을 내렸다가, 절반을 다시 성문 위로 돌렸다.

새벽에는 북소리가 달라졌다. 맨 앞의 코끼리 이마에는 두꺼운 가죽 덮개가 씌워져 있었다. 등에 탄 궁수가 성 위를 향해 화살을 보냈다. 아래에서는 보병들이 젖은 가죽을 씌운 큰 방패를 들어 기수의 옆을 가렸다.

코끼리가 성문에 이마를 댔다. 처음에는 문이 버텼다. 두 번째 충격에 쇠고리가 나무 안으로 파고들었다. 세 번째에는 문 뒤의 받침목이 길게 갈라졌다.

성문을 지키던 병사는 손으로 나무를 밀었다. 자기 힘이 코끼리의 힘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을 떼지 못했다.

옆의 병사가 그의 허리띠를 잡아당겼다. 그제야 손바닥에 박힌 나무 가시가 빠지며 피가 났다. 둘은 두 번째 받침목을 걸려고 했지만 홈이 충격으로 비틀려 들어가지 않았다. 문 너머에서 코끼리의 숨이 풀무처럼 새어 들어왔다. 기수가 내는 짧은 구령과 짐승의 발톱이 돌을 긁는 소리가 문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들렸다.

문이 터졌을 때 소리는 오히려 짧았다.

깨진 문짝이 바닥을 쓸며 밀려왔다. 코끼리 발이 그 위를 밟았고, 뒤따르던 창병들이 좁은 틈으로 쏟아졌다. 성벽 한쪽에서는 비에 약해진 흙과 돌이 공병의 지렛대 아래 무너졌다. 큰 짐승의 어깨가 밀어 올린 먼지 속으로 깃발이 사라졌다.

봉화를 지키던 소년은 불씨를 항아리에 담아 뒷계단으로 내려갔다. 지휘관은 그에게 다샤푸라까지 갈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소년은 대답 대신 항아리를 품에 넣었다. 남문 밖 비탈에는 아직 적이 닿지 않은 염소 길이 있었다.

“불씨 말고 본 것을 가져가라. 코끼리 수, 공병의 방패, 기병이 향한 길.”

소년은 열두 마리라고 되뇌었다. 지휘관은 성 안에 남은 사람의 수를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확인하지 못한 수를 전하면 소식이 아니라 희망이나 공포가 될 뿐이었다.

도망친 전령은 사흘째 되는 밤 다샤푸라에 닿았다. 므리날리니는 젖은 망토도 벗지 않은 그를 의자에 앉혔다.

“얼마나 남았느냐.”

전령은 군사의 수를 말하려 했다. 여왕이 다시 물었다.

“성 안 사람들 말이다.”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전령의 무릎에서 마른 진흙이 떨어졌다. 시종이 물을 내왔지만 그는 잔을 잡지 못했다. 손가락이 사흘 동안 고삐를 쥔 모양으로 굳어 있었다. 므리날리니는 직접 잔을 받쳐 주었다. 물을 삼킨 뒤에도 그는 마지막으로 본 성문의 모습을 말하지 못했다.

여왕은 서기관에게 새 장부를 펴게 했다. 전령이 코끼리가 지나간 간격을 손가락으로 짚어 가자 서기관은 막대 열둘을 그어 수를 맞추고, 젖은 가죽의 가림막과 기병이 향한 길은 다른 줄에 옮겼다. 생존자 수를 묻는 칸에서 펜이 멎자 여왕은 그 자리에 봉화를 마지막으로 본 시각만 적으라고 했다. 전령은 떨리는 손으로 그 줄 아래에 자기 표식을 남겼다.

여왕은 아들에게 보낼 편지를 꺼냈다. 돌아오라고 쓰려다가 펜을 멈췄다. 자유를 약속했으니 소식을 숨겨야 하는가. 그것은 약속이 아니라 아들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으로 남겨 두는 일이었다.

그녀는 요새가 함락되었다고 썼다. 적군의 규모와 진로, 아직 확인하지 못한 것까지 적었다.

‘네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 다오.’

먹이 마르는 동안 그녀는 그 문장을 세 번 읽었다. 왕자를 부르는 어머니의 말인지, 흩어진 병력을 모아야 하는 여왕의 말인지 스스로도 가를 수 없었다. ‘서둘러라’라고 썼다가 지웠다. 지운 자리에 종이 섬유가 일어나 손끝에 거칠게 걸렸다.

그 뒤에는 명령을 덧붙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