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 비교와 한계
배우자의 공격을 막다가 상대방을 사망하게 한 사건은 반의사불벌과 다른 질문을 제기합니다. 핵심은 방어행위의 정당성, 당시 위험과 사용한 힘, 그리고 검찰이 범죄를 입증할 수 있는지입니다. 피해자나 유족의 용서가 정당방위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에서 이러한 사건을 기소하지 않는 결정은 가능합니다. 그 결정이 얼마나 흔한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은 주마다 법과 실무가 다르고, 오랫동안 학대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전국에서 자동으로 면책되는 제도는 없습니다.
캘리포니아의 공식 검토자료는 반복된 폭력과 그 영향에 관한 전문가 증언이 정당방위 판단에 활용될 수 있음을 설명하면서도, 급박성 등 기존 요건이 피해자에게 장벽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 자료의 제안과 현재 시행 중인 법은 구별해야 합니다.
한국 형법 제21조 역시 현재의 부당한 침해와 방어의 상당성을 요구합니다. 피해자의 장기간 학대 경험을 어떻게 수사하고 판단에 반영할지는 중요한 개혁 과제입니다. ‘왜 떠나지 않았느냐’는 질문만으로 당시 위험과 탈출의 어려움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학대 이력과 위협에 관한 조사, 전문가 의견, 무료 법률지원, 구속 필요성을 사건마다 판단하는 일입니다. 기소할지, 구속하거나 석방할지, 무죄로 볼지는 각각 다릅니다. 방어행위는 사실관계에 따라 정당방위가 될 수 있지만, 사실 없이 살인 자체를 면책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 형법 제21조의 요건을 풀어씁니다.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있어야 하고, 방어를 위한 행위여야 하며,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말은 간단하지만 장기간 학대의 맥락에서는 각 요건이 다르게 읽힙니다. '현재의' 침해는 그 순간의 주먹만을 말하는지, 이어져 온 위협을 포함하는지를 묻게 됩니다. '상당한' 방어는 당시 피해자가 쓸 수 있었던 수단 가운데 무엇을 말하는지를 묻게 됩니다. 법전의 글자는 같아도 사실관계가 다르면 판단이 달라집니다.
급박성의 장벽을 짚습니다. 캘리포니아의 공식 검토자료는 반복된 폭력과 그 영향에 관한 전문가 증언이 정당방위 판단에 활용될 수 있음을 설명하면서도, 급박성 등 기존 요건이 피해자에게 장벽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잠든 가해자에 대한 행위, 헤어진 뒤의 대치처럼 교과서 밖 사안에서 요건은 좁게 작동할 수 있습니다. 그 자료의 제안과 현재 시행 중인 법은 구별해야 합니다. 제안은 방향이고 법은 현실입니다.
수사와 지원의 과제를 적습니다. 피해자의 장기간 학대 경험을 어떻게 수사하고 판단에 반영할지, 전문가 의견을 어떤 절차로 들을지, 무료 법률지원을 어떻게 연결할지, 구속 필요성을 사건마다 어떻게 판단할지가 남습니다. 기소할지, 구속하거나 석방할지, 무죄로 볼지는 각각 다릅니다. '왜 떠나지 않았느냐'는 질문만으로 당시 위험과 탈출의 어려움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방어행위는 사실관계에 따라 정당방위가 될 수 있지만, 사실 없이 살인 자체를 면책할 수는 없습니다.
어머니를 보호하려던 아들이 피고인이 된 사건들
기사 제목이나 링크만으로는 이 사건들의 구조가 보이지 않습니다. 누가 누구를 보호하려 했는지, 폭력이 얼마나 이어졌는지, 그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법원이 무엇을 판단했는지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대전: 부부싸움을 말리던 15세 아들
2022년 10월 8일 저녁 대전의 한 집에서 40대 가장이 흉기에 찔려 숨졌습니다. 당시 만 15세였던 아들은 처음 조사에서 부부싸움을 말리다가 우발적으로 범행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경찰은 아들에게 존속살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나이와 증거인멸·도주 우려 등을 이유로 첫 영장을 기각했습니다. 이후 경찰은 어머니도 범행에 가담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추가로 확보했다며 아들의 영장을 다시 신청하고 어머니에 대해서도 영장을 신청했습니다. 참고 기사에 담긴 내용은 이 수사 단계까지이므로, 그 진술을 확정된 사실이나 최종 판결처럼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분명한 것은 부부 사이의 폭력적 충돌 한가운데 있던 미성년 자녀가 아버지의 죽음과 존속살해 수사의 당사자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평택: 전날 어머니를 때린 아버지
2020년 10월 20일 새벽 평택의 집에서 한 아들이 70대 아버지와 말다툼하던 중, 아버지가 전날 어머니를 때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둔기를 휘둘렀고 아버지는 숨졌습니다. 검찰은 살인의 고의가 아니라 폭행으로 사망 결과를 냈다는 존속상해치사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1심은 아들이 지속적인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분노가 폭발해 우발적으로 범행한 사정을 인정하면서도, 생명을 잃게 한 결과와 범행 수법이 무겁다고 보아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항소심도 그 형이 합리적인 재량 범위에 있다고 판단해 징역 5년을 유지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을 막지 못한 시간은 결국 아버지의 죽음과 아들의 수감으로 이어졌습니다.
서울 은평: 30년 넘게 이어진 폭언과 폭행
2024년 10월 27일 서울 은평구의 집에서 34세 아들이 어머니에게 술값을 달라며 폭언하는 아버지를 둔기로 때려 숨지게 했습니다. 조사와 재판에서 아들은 어린 시절부터 30년 이상 아버지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린 것으로 나타났고, 2017년과 2021년에는 실제 가정폭력 신고도 있었습니다. 법원은 아들이 성인이 된 뒤에도 자신이 독립하면 어머니가 폭력에 홀로 노출될 것을 걱정해 취업 준비조차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범행 뒤에는 어머니와 함께 목숨을 끊으려다 실패하고 경찰에 자수했습니다. 2025년 5월 1심은 무방비 상태의 피해자를 공격해 숨지게 한 책임이 무겁다고 보면서도 장기간의 폭력, 우발성, 반성과 전과가 없는 점을 함께 고려해 존속살해죄로 징역 6년을 선고했습니다. 신고 기록이 남았는데도 폭력의 고리가 끊기지 않았고, 한 사람은 숨지고 다른 한 사람은 피고인이 되었으며 남은 어머니도 두 사람을 한꺼번에 잃었습니다.
필리핀 자택: 흉기를 빼앗으려다 벌어진 죽음
2017년 10월 필리핀의 자택에서 한식당 개업 공사 문제로 가족 간 말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아버지는 딸을 때렸고, 아내가 항의하자 주방의 흉기를 들어 아내와 딸을 위협했습니다. 30대 아들은 흉기를 빼앗으려 몸싸움을 하다가 양팔을 베였습니다. 이후 프라이팬으로 아버지의 머리를 내리치고 목을 졸라 숨지게 했습니다. 1심은 존속살해죄로 징역 10년을 선고했습니다. 항소심은 아버지가 유발한 가정폭력 상황에서 당황하고 격분해 우발적으로 범행했고, 어머니와 여동생이 선처를 간절히 탄원했으며 전과가 없다는 점을 고려해 징역 6년으로 감형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와 여동생이 방으로 들어간 뒤에는 더 이상 즉각적인 위협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정당방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대법원은 2025년 징역 6년을 확정했습니다.
이 사건들에서 아들의 행위가 모두 정당방위였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수사 단계에 머문 사건, 존속상해치사로 판단된 사건, 존속살해 유죄가 확정된 사건의 사실관계와 법적 결론은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가정폭력이 피해 배우자에게만 머물지 않고 이를 막으려는 자녀까지 폭력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이며, 끝내 가족 한 사람의 죽음과 다른 가족의 처벌로 이어진 사례가 거듭 확인된다는 공통점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례들을 반의사불벌죄 폐지와 연결할 때는 순서를 정확히 보아야 합니다. 위 사건들의 사망 결과에 적용된 살인·존속살해·존속상해치사는 애초에 처벌불원만으로 공소를 막을 수 있는 범죄가 아닙니다. 반의사불벌 규정을 없앤다고 이미 벌어진 죽음의 재판 결과가 자동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개혁이 겨냥해야 할 시점은 죽음 뒤가 아니라 그 전입니다. 가정 안의 단순폭행·협박이 신고되었을 때 피해자의 처벌불원만으로 국가 대응이 멈추지 않게 하고, 반복성·살해 협박·흉기·강압적 통제를 조사해 분리와 보호를 실행해야 치명적인 단계로 번지는 것을 막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가정폭력처벌법은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1997년에 이미 제정되었습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표현은 특별법의 ‘새 제정’이 아니라 실효성을 높이는 개정입니다. 가정폭력에 해당하는 일정한 폭행·협박에 형법상 반의사불벌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특례, 의무적인 위험평가와 신속한 분리, 접근금지 위반에 대한 대응, 증거 중심 수사, 피해자와 자녀의 주거·생계·법률 지원을 함께 강화해야 합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죽고 다른 한 사람이 수감된 뒤에야 국가가 개입하는 구조라면 너무 늦습니다.
피해자 본인이 반격한 사건들의 기록도 이어집니다. 1991년에는 10년간 가정폭력과 끊임없는 살해 협박에 시달린 피해자가 가해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1심은 징역 3년을 선고했고 최종심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의 유죄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사건의 구명활동이 사회적 공론을 모아 1997년 가정폭력 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졌습니다. 2004년 사건에서는 '이혼하거나 신고할 수 있었다'는 이유로, 2011년 사건에서는 가해자가 잠이 들어 침해가 일단락되었다는 이유로 정당방위가 부정되었습니다. 개별 사건에서 가정폭력 피해 여성의 정당방위가 인정된 사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대법원의 법리를 대조합니다. 한편에서는 잠자는 남편을 살해한 사안에서 주관적 공포를 수긍하면서도 객관적으로 침해가 현존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을 부정했습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일련의 연속되는 행위로 침해상황이 중단되지 않았거나 일시 중단되었어도 추가 침해가 곧바로 발생할 객관적 사유가 있으면 전체적으로 침해가 종료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하여 현재성을 넓혔습니다. 어느 법리가 어느 사실관계에 적용될지가 쟁점입니다. 배우자 살인 판결문 연구에서는 피고인이 가정폭력 피해자인 집단의 선고형량이 유의미하게 짧았고, 처벌불원이 고려된 경우에도 형량이 짧았습니다. 가해자인 집단은 일반 살인과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습니다.
이 장의 한 문장: 방어행위의 정당성은 사실관계에서 판단하되 학대의 맥락을 수사부터 반영해야 합니다.

참고자료
캘리포니아 형법개정위원회 2025년 검토자료 https://clrc.ca.gov/CRPC/Pub/Memos/CRPC25-01.pdf
대법원: 잠자는 남편 살해 사건 https://www.law.go.kr/LSW/precInfoP.do?precSeq=70588
대법원: 침해의 현재성 판단 사건 https://www.law.go.kr/LSW/precInfoP.do?evtNo=2020%EB%8F%846874
연합뉴스: 대전 15세 아들 존속살해 https://www.yna.co.kr/view/AKR20221017055900063
서울신문: 평택 아들 항소심 징역 5년 https://www.seoul.co.kr/news/society/2022/05/16/20220516500120
한겨레: 은평 30년 가정폭력 아버지 살해 징역 6년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96959.html
연합뉴스: 필리핀 아들 존속살해 징역 6년 확정 https://www.yna.co.kr/view/AKR20251028056000004
한겨레: 친밀한 남성이 죽인 여성 10년간 1072명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23837.html
형법 제21조 관련 헌법재판소 결정 https://law.go.kr/LSW/detcInfoP.do?detcSeq=137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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