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 북쪽, 열 해

열 해 전, 여왕은 판을 놓고 이기면 떠나도 좋다고 말한다.

여왕의 조건 장면을 인도 세밀화풍으로 그린 삽화
여왕의 조건 장면을 인도 세밀화풍으로 그린 삽화

그 편지에 명령이 없었던 이유를, 그는 열 해 전 대전에서 들었다.

대전 한가운데 낮은 탁자가 놓였다. 시종들은 말 하나가 저절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바닥의 수평을 맞췄다.

탁자 위에는 여덟 줄씩 가로세로로 나눈 나무판과 두 무리의 말이 있었다. 흰 말은 강가의 밝은 목재로, 짙은 말은 오래 말린 나무로 깎았다. 모양은 왕, 신하, 코끼리, 말, 전차, 보병이었다. 새 나무와 밀랍 냄새가 향 연기 사이에서도 났다.

궁정의 목공 케샤바가 허리를 숙였다. 손가락 하나가 없었다. 젊어서 전차 바퀴를 만들다가 잃었다고 했다. 그는 남은 손가락으로 판의 네 귀를 차례로 눌렀다. 나무가 습기를 먹어 휘지 않았는지 마지막으로 보는 손길이었다.

“장군들의 모래판을 작게 옮겼습니다. 말이 움직일 길을 정해 두면, 누구든 같은 조건에서 생각을 겨룰 수 있습니다.”

다라세나가 전차 말을 들어 무게를 살폈다. 케샤바는 같은 종류의 말은 높이뿐 아니라 무게도 비슷하게 맞추었다고 했다.

“어느 지방의 규칙을 따른 것이냐?”

수바후가 묻자 케샤바는 판 가장자리를 쓸었다.

“한 지방 것을 그대로 옮기지 않았습니다. 상인들이 두는 법과 병영의 연습을 섞어 이 궁정에서 시험할 수 있게 줄였습니다. 오늘 정한 길도 불편하면 다음 판에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여왕은 시험 중인 판을 아들에게 줄 새로운 과제로 삼았다.

“네가 이기면 떠나도 좋다.”

대전에 모인 대신들 사이에서 옷감 스치는 소리가 났다. 재상 수바후는 왕자가 궁정을 떠난다는 말보다 후계자가 승부로 허락을 얻는다는 형식을 먼저 걱정했다.

“전하, 나라의 의무를 놀이에 걸 수는 없습니다.”

“의무를 거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고른 공부를 감당할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

여왕은 아린드라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린드라가 고개를 들었다.

“어디로요?”

“네가 배우고 싶은 곳으로. 스승도, 공부할 책도 네가 고르거라. 내가 사람을 붙여 하루를 정하지 않겠다.”

그 말은 호위도 비용도 끊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여왕은 호위의 수와 여비는 국고가 정하되, 어느 스승 아래 얼마나 머물지는 아들이 정하게 하겠다고 분명히 했다. 수바후가 그 문장도 기록해야 한다는 듯 타라를 바라보았다.

대신 아린드라가 지면 앞으로 세 해 동안 여왕이 정한 군사 교육을 따르기로 했다. 새벽부터 정오까지는 훈련장, 오후에는 군정 회의, 철마다 국경 순시였다. 아린드라는 판보다 어머니를 오래 보았다. 세 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 뒤에는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왜 하는지 잊게 될까 두려웠다.

“제가 떠나 있는 동안 나라의 일이 생기면 연락을 주십시오.”

“어떤 일까지 말이냐. 창고 하나가 비어도? 국경에서 말 한 필을 빼앗겨도?”

“어머니께서 제가 여기 있다면 알게 하셨을 일은 모두요.”

“그 소식을 듣고 네가 돌아올지는 누가 정하지?”

아린드라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떠날 자유를 얻고도 매번 어머니의 판단을 기다린다면 장소만 달라질 뿐이었다.

“자유를 달라면서 내 명령도 기다리겠다는 것이냐?”

“명령 말고 소식을 기다리겠습니다. 돌아올지는 제가 정하겠습니다.”

말을 하고 나니 무례함보다 책임이 먼저 느껴졌다. 여왕도 그 차이를 들은 듯 눈썹을 조금 내렸다.

여왕은 대답하지 않았다. 승부의 조건을 기록하라는 손짓을 했다. 타라가 갈대 펜을 들었다. 왕자의 조건까지 적으려 하자 재상 수바후가 손을 내밀었다.

“필요 없는 문장이다.”

“말씀하신 것은 적어야 합니다.”

타라가 조용히 말했다. 여왕이 고개를 끄덕이자 재상은 손을 거두었다. 타라는 ‘소식을 보낸다’와 ‘돌아오라 명하지 않는다’를 나누어 적었다. 먹이 마르기 전에 수바후가 다시 읽어 보았지만 지울 곳을 찾지 못했다.

말의 길은 그 자리에서 하나씩 합의했다. 전차는 막히지 않은 곧은 길을 달리고, 말은 굽은 걸음을 뛰며, 신하는 왕 곁에서 짧게 움직이기로 했다. 다라세나는 북쪽 병영에서 코끼리를 다르게 움직였다고 말했다. 케샤바는 코끼리 말 밑에 새긴 표시를 보여 주며 이번 승부에서는 이 길을 쓰자고 했다. 타라는 다른 판의 규칙과 섞이지 않도록 ‘대전의 판’이라고 제목을 붙인 뒤 막힌 길과 말을 잡는 법까지 받아 적었다.

아린드라는 보병 하나를 끝줄까지 밀면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케샤바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정하지 않은 규칙은 승부 전에 정해야 합니다.”

여왕이 말했다.

끝에 닿은 보병은 잡힌 같은 편 말 가운데 하나로 바꿀 수 있다고 합의했다. 타라가 그것도 조건 아래에 적었다.

“사흘 뒤에 둔다.”

여왕은 짙은 왕을 집었다. 아린드라가 어릴 때부터 만지던 나무 인형보다 작았다.

“사흘이면 충분하겠느냐?”

“규칙을 배우기에는 충분합니다.”

“나를 이기기에도?”

아린드라는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그건 두어 봐야 압니다.”

여왕은 짙은 왕을 제자리에 놓았다. 말이 판에 닿는 소리가 작고 단단했다.

“연습 상대는 네가 구해라. 단, 내 수를 엿본 사람에게는 묻지 마라.”

“어머니도 연습하실 겁니까?”

“그것도 두어 보면 알겠지.”

그날 오후 소문이 장터까지 퍼졌다. 책벌레 왕자가 여왕에게 나라 밖으로 나갈 허락을 걸었다는 소문이었다. 주막에서는 누가 먼저 질지 돈을 걸었다. 여왕의 패배를 점치는 사람은 드물었다.

궁전에서는 타라와 수바후가 말의 수를 함께 세고 상자를 봉인했다. 승부 뒤에 어느 쪽도 바뀐 말을 탓하지 못하게 하는 절차였다.

케샤바는 빈 탁자를 닦다가 타라에게 말했다.

“말을 다 깎아 놓으니 사람이 하나 부족하구나.”

“무슨 사람요?”

“판 밖에서 말을 치우는 사람.”

“잡힌 말을 말합니까?”

“잡힌 것과 버린 것은 다르지. 두는 사람은 앞만 보느라 자기가 무엇을 없앴는지 잊을 수 있어.”

타라는 그 문장을 조건문 아래에 적었다. 아직은 어디에 쓸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