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 · 판이 떠난 뒤

다른 사본이 중국 서쪽 교역 도시에서 새 판으로 옮겨진다.

동쪽 판에는 강이 있었다 장면을 인도 세밀화풍으로 그린 삽화
동쪽 판에는 강이 있었다 장면을 인도 세밀화풍으로 그린 삽화

서쪽의 사본에 살마의 여백이 생기기 훨씬 전, 다샤푸라에서 베낀 다른 책 한 묶음은 북쪽으로 향했다. 타라의 제자가 만든 얇은 발췌본이었다. 두꺼운 전쟁 기록을 줄이고 대국과 여왕의 편지를 남긴 책이었다.

제자는 책을 떠나는 상단의 서기에게 맡겼다. 서기는 비단 값 대신 받은 것이 아니라고 장부에 적고, 책등에 실을 두 번 감아 자기 문서 궤짝에 넣었다. 첫 고개를 넘은 뒤에는 짐을 줄이려고 약초 상인에게 팔았다. 약초 상인은 글을 읽지 못했지만 말 그림을 환자에게 설명할 때 쓸 수 있다며 가져갔다. 그는 다음 대상 숙소에서 약재값이 모자라자 사본을 종이 장수에게 넘겼다. 누구도 다음 도시까지 전할 책임을 맡지는 않았으나, 닳은 종이도 값을 받을 수 있었으므로 불쏘시개가 되기 전에 번번이 새 주인을 만났다.

종이 장수의 짐에 든 책은 산길과 오아시스를 건넜다. 한 장은 불을 피우는 데 쓰였고, 다른 두 장은 비에 젖어 서로 붙었다. 사막 가장자리의 역참에서 장수가 젖은 책을 펼치자, 글씨를 아는 승려가 붙은 두 장을 김에 쐬어 떼었다. 먹이 번져 읽히지 않는 곳에는 억지로 글자를 넣지 않고 둥근 표시를 했다. 그는 여왕의 편지가 든 뒤쪽을 앞으로 옮겨 새로 꿰어 종이 장수에게 돌려주었다.

그 상태로 책은 북쪽 대상의 통행 문서 사이에 끼었다. 국경의 세금 관리는 종이 장수에게서 밀린 세금 일부로 사본을 받았다. 관리의 조카가 책의 말 그림을 보고 외국 손님에게 내용을 물었고, 손님이 읽어 주는 말을 받아 현지 말로 거친 번역을 만들었다. 상인들이 전한 놀이도 같은 길을 오갔지만, 책과 판이 언제나 같은 사람의 짐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1세기 후반, 중국 서쪽의 어느 교역 도시에서 목공 린허가 관리의 조카가 만든 번역을 다시 베낀 종이를 얻었다. 그는 외국말을 읽지 못했다. 역관이 읽어 주는 동안 린허의 딸 샤오란이 들리는 대로 새 종이에 적었다.

역관은 한 구절을 읽고 자기 말로 뜻을 풀었다. 샤오란은 붓끝이 마르기 전에 짧은 문장으로 옮겼다가, 사람 이름이 나오면 다시 발음을 물었다. 같은 소리를 세 번 다르게 들은 곳에는 작은 점을 찍었다. 린허는 대패를 밀면서도 왕자와 어머니라는 말이 들릴 때마다 손을 늦췄다. 젖었다 마른 종이에서는 먼지와 오래된 풀 냄새가 났다.

“왕자가 어머니에게 이겨서 집을 떠났다.”

린허가 웃었다.

“우리 집에서는 네가 매일 이기는데 왜 안 떠나느냐?”

“아버지가 밥을 해 주시니까요.”

린허의 고장에서 시험해 두던 판 가운데에는 한가운데 강을 그린 것이 있었다. 말은 칸 안이 아니라 선이 만나는 곳에 놓았고, 장수의 자리를 몇 줄 안으로 제한한 판도 있었다. 다른 골목의 판에는 강이 없거나 궁의 선이 달랐다. 포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반드시 다른 말을 넘어야 하는지, 잡을 때만 넘어야 하는지를 두고 말이 갈렸다. 린허는 인도의 그림과 자기가 익힌 변형판을 번갈아 보았다.

외국 그림의 칸 수를 세던 그는 얇은 나무쪽에 먹줄을 튕겼다. 먹 묻은 실이 탁 소리를 내며 곧은 자국을 남겼다. 샤오란은 번역 종이 위에 판을 올리지 말라며 얼른 치웠다. 그림 속 말은 칸 안에 있었고, 그들이 두는 둥근 말은 교차점에 놓였으므로 같은 수를 그대로 옮길 수 없었다. 린허는 왕자가 전차를 내준 대목에 닿자 어느 말을 어디에 놓아야 길이 열리는지 역관에게 다시 물었다. 역관도 기보를 읽지 못해 손바닥을 들었다.

어느 쪽이 먼저냐는 이야기는 술집에서도 갈렸다. 이 나라의 옛 전쟁에서 나왔다는 사람도, 서쪽에서 온 놀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린허는 어느 쪽도 증명할 수 없었다. 다만 같은 도시에서도 판마다 강과 궁과 포의 쓰임이 달랐고, 남쪽에서 온 손님과 두려면 규칙을 먼저 맞추어야 한다는 것만은 잘 알았다.

도시의 군관이 발췌본을 보고 찾아왔다. 그는 여왕과 왕자의 이야기를 들은 뒤 인도의 판 모양대로 새 세트를 만들라고 주문했다.

“먼 나라의 오래된 전술을 익히려는 것이다.”

린허는 주문한 대로 만들었다. 그런데 군관은 새 판에서 진 뒤 자기 고장의 말 걸음을 쓰겠다고 했다. 강을 그려 넣고 포도 더하라고 했다. 목공은 값을 다시 계산했다.

첫 판은 얕은 상자처럼 만들어 뚜껑을 뒤집으면 말판이 되게 했다. 린허는 그림에서 확인할 수 없는 말의 표시는 새기지 않고 작은 종이 딱지를 붙였다. 군관과 함께 온 병사가 딱지를 옮길 때마다 샤오란이 순서를 적었다. 세 사람이 합의한 규칙으로 한 판을 마치기도 전에 군관의 왕이 막혔다. 그제야 군관은 포가 없는 판은 실전에 쓸모가 없다고 말했다.

린허는 이미 마른 나무를 잘라 붙였으니 강을 더 그리려면 표면을 다시 밀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포 두 알을 만들 나무와 글자를 새길 품도 따로였다. 군관은 처음 주문에 다 든 값이라고 우겼다. 작업대 위에는 지운 먹선에서 나온 검은 가루가 쌓였다.

군관이 화를 내자 샤오란이 물었다.

“이 판은 어느 나라 판으로 만들까요?”

군관은 잠깐 말이 없었다. 결국 두 벌을 만들게 했다.

그날 밤 린허는 딸과 익숙한 강 있는 판을 폈다. 둘은 포가 다른 말을 넘어 움직이고 잡게 하되 포끼리는 넘지 못한다는, 그날 목공소에서 맞춘 규칙으로 두기로 했다. 샤오란은 포 뒤에 받침이 될 말을 두었다. 린허는 자기 말을 잡으려던 손을 멈췄다. 그녀가 만든 길을 이제야 보았다.

“그 인도 여왕도 이렇게 보았을까?”

샤오란이 물었다.

“무엇을?”

“자기가 아는 아이보다 먼저 움직인 아이요.”

린허는 대답 대신 말을 옮겼다. 딸이 이겼다.

샤오란은 번역본의 마지막 빈칸에 그날 밤 아버지와 둔 짧은 대국을 손글씨로 이어 적었다. 아버지 린허가 딸의 수를 뒤늦게 알아보고 패배를 인정했다는 문장도 남겼다.

종이가 마른 뒤 린허는 얇은 판자 두 장을 대고 붉은 실로 묶었다. 번역값을 받으러 온 역관은 그 사본을 보고 다른 상인에게 빌려주면 값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샤오란은 돌려받을 날짜와 빌린 사람의 이름을 앞장 안쪽에 적었다. 그러나 첫 상인이 돌아오기 전에 동쪽으로 떠나면서 책값을 치렀고, 사본은 다시 그의 짐이 되었다. 린허의 이름과 딸이 적은 대국은 그렇게 목공소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