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 내준 수
아린드라가 왕국을 떠난 지 열 해 뒤, 여왕은 왕 곁에 붙여 두었던 것을 스스로 푼다.

귀환 이튿날, 므리날리니는 퇴위문에 쓸 종이를 가져오게 했다.
다샤푸라에서는 꽃보다 먼저 돌이 움직였다. 사람들은 부서진 성문을 치우고 우물을 씻었다. 승전한 군대가 들어올 길을 만들면서, 길 가장자리에는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이름을 붙였다.
우물에서는 두레박으로 물을 모두 퍼낸 뒤 바닥의 재와 흙을 긁었다. 침입군이 던진 가죽 조각과 부러진 화살이 올라왔다. 물맛이 돌아올 때까지 사흘 동안 누구도 그 물을 마시지 않았다.
전날, 므리날리니는 성루 아래에서 아들을 맞았다. 아린드라는 말에서 내렸고, 여왕은 그의 얼굴에 붙은 먼지를 닦았다. 백성들이 환호하는 동안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왕자의 뺨에 난 얕은 상처에서 멈췄다. 다치거든 감추지 말라고 쓴 편지가 떠올랐다. 묻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성문 앞은 어머니가 아들을 심문할 자리가 아니었다.
그날 밤 아린드라는 왕좌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머니께서 지킨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여왕은 그를 일으켰다.
“네가 돌아와 준 성이기도 하다.”
신하들은 왕자의 즉위를 청했다. 다라세나는 공을 세운 동쪽 영주들의 이름을 함께 올렸다. 누구의 힘으로 승리했는지 빠뜨리면 다음 전쟁에서 누구도 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여왕은 그 명단을 즉위문 옆에 놓게 했다.
청원은 말로만 올리지 않았다. 재상부는 왕자의 혈통과 전쟁 중 내린 명령, 연합 영주들의 동의를 한 장씩 확인했다. 살아남은 지방관들은 자기 인장을 찍었고, 전사한 영주의 자리는 후계자가 증인 앞에서 서명했다.
므리날리니는 세 번 문서를 돌려보냈다. 첫 문서에는 난다와 공병들의 이름이 없었고, 두 번째에는 성을 지킨 시장 상인들의 곡식이 ‘왕실 조달’로만 적혀 있었다. 세 번째에야 그녀는 인장을 찍었다.
수바후는 포로를 팔아 성벽 비용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아린드라는 반대했다. 곡식 약탈에 가담한 자와 강제로 징집된 자를 가리지 않는 벌이라고 말했다. 대신 압수한 군벌의 재산과 왕실 장식품을 먼저 쓰자고 했다.
그는 포로 명부를 셋으로 나누게 했다. 약탈과 살인에 가담했다는 증언이 있는 자, 돈을 받고 싸운 자, 마을에서 끌려온 자였다. 증언은 두 사람 이상에게 따로 듣게 했다. 한 줄에 넣기 쉬운 사람들을 가르는 데 여러 날이 들었다.
대전이 조용해졌다. 므리날리니는 목의 금목걸이를 풀었다.
“이것은 내 남편의 즉위 때 만든 것이다. 이제 문을 만드는 데 쓰겠구나.”
왕자는 다시 무릎을 꿇으려 했다. 여왕이 막았다.
“감사할 시간에 값을 매겨라. 금이라고 해도 속이 빈 부분이 있다.”
그녀는 웃었다. 이번 웃음은 복도로 나가서도 남아 있었다.
며칠 뒤 저녁 므리날리니는 퇴위문 초안을 구술했다. 전쟁이 끝났으니 쉬겠다는 문장만으로는 부족했다. 새 왕이 명령할 때마다 옛 여왕의 허락을 기다리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권한이 넘어가는 날짜와 국새, 군대의 서약을 분명히 해야 했다.
“제가 즉위를 청했다고 쓰십시오.”
아린드라가 말했다.
“그러면 네가 나를 밀어낸 모양이 된다.”
“어머니께서 혼자 정하셨다고 쓰면 제가 왕위를 기다린 모양이 됩니다.”
두 사람은 초안을 사이에 두고 침묵했다. 마침내 ‘여왕은 전쟁이 끝난 지금 스스로 왕위를 놓고, 왕자는 전쟁과 귀환의 책임을 받아 잇는다’고 적었다. 므리날리니는 그 문장을 다시 읽고 다음 조항을 구술했다.
즉위식에서 아린드라는 새 왕의 이름으로 불렸다. 그러나 그의 첫 문서는 영토 확장 명령이 아니라 사망자 가족에게 지급할 곡식의 수량이었다. 타라가 문서를 읽었고,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따로 설명하게 했다.
즉위식 전날 국새를 보관한 상자가 대전으로 옮겨졌다. 므리날리니와 아린드라, 재상, 타라가 밀랍 봉인이 온전한지 함께 보았다. 서기관이 이전 명령의 마지막 번호를 읽고 새 치세의 첫 문서 번호를 비워 두었다.
아침에는 성문과 병영, 곡물 창고에서 온 대표들이 차례로 서약했다. 충성의 대상이 하루 사이에 둘이 되지 않게, 므리날리니가 먼저 자신에게 한 서약을 풀어 주었다. 그 뒤에야 아린드라가 왕관을 받았다.
여왕이 왕관을 내려놓자 재상이 물었다.
“태후께서는 앞으로 어느 일을 보시겠습니까?”
“당분간 아무 일도 맡지 않겠다.”
그 답이 모두를 놀라게 했다. 므리날리니 자신도 조금 놀랐다. 나라를 지키느라 늦잠을 잔 적이 언제였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수바후는 자문 회의를 맡아 달라고 다시 청했다. 동쪽 영주들은 그녀의 이름이 명령문에 남아야 안심할 것이라고 했다. 므리날리니는 고개를 저었다.
“내 이름이 있어야만 따르는 명령이라면 새 왕의 명령이 아니다.”
그녀는 국새의 끈을 아린드라의 손에 놓았다. 오래 쥐어 반들거리는 끈이었다. 아린드라는 두 손으로 받았지만 어머니의 손까지 붙잡지는 않았다. 놓는 일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왕궁의 작은 정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아린드라는 사흘째 되는 날 찾아왔다. 어머니가 책을 읽고 있었다. 왕자가 예전에 물을 받던 그릇이 화분 옆에 놓여 있었다.
거처를 옮길 때 므리날리니가 가져간 상자는 둘뿐이었다. 옷과 편지, 케샤바가 깎은 말들이 들어갔다. 국정 문서는 문서고에 남겼다. 시종이 내일 회의 일정을 묻다가 입을 다물자 그녀는 처음으로 아침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판 두시겠습니까?”
여왕은 책갈피를 끼웠다.
“이번에는 무엇을 걸 것이냐?”
“아무것도 걸지 않겠습니다.”
그녀는 케샤바가 깎은 말들을 꺼냈다. 왕자가 새 왕이 되었어도 작은 신하는 여전히 짧은 길만 걸었다. 여왕은 그 말을 앞으로 밀며 말했다.
“그러면 이번에는 져도 괜찮겠구나.”
타라는 정원 문밖에서 두 사람의 말을 들었다. 기록하지 않았다. 왕과 태후가 아니라 어머니와 아들이 저녁을 보내는 시간이었다.
시종이 새 왕의 결재를 기다리는 문서가 있다고 알리러 왔다가 타라의 손짓을 보고 멈췄다. 성문용 철물의 최종 값이었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까지 기다려도 누구의 끼니가 끊기지 않는 문서였다.
그날 대국은 아린드라가 졌다. 그는 판을 오래 보다가 웃었다. 여왕은 이긴 말을 치우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누구도 누구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았다.
식탁에는 정원에서 딴 잎을 넣은 묽은 수프가 올랐다. 왕궁의 연회보다 소박했지만 므리날리니는 어느 그릇을 먼저 들지 살피지 않았다. 아린드라는 내일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 돌아갈 때 어머니의 방문 앞에 호위병을 더 세우지도 않았다.
정원 문이 닫힌 뒤에도 국새는 대전의 새 상자 안에 있었다. 므리날리니의 손목에는 목걸이 자국만 희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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