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 · 성문과 판
북문이 터진 뒤 왕자는 길 하나를 비우고 나머지는 보병으로 닫는다.

아린드라가 왕국을 떠난 지 열 해 뒤, 다샤푸라의 포위전에서 북문이 무너지기 전이었다. 그는 적의 선두가 들어올 길 하나만 남겨 두고 나머지 골목을 막기로 했다. 마구간의 작은 판에서 다라세나에게 거듭 지며 익힌 방법이었다.
명령은 북소리와 깃발로 나누어 전해졌다. 골목마다 왕자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있을 수는 없었다. 짧은 북 두 번은 수레를 세우라는 뜻, 붉은 깃발을 내리면 남쪽 길을 열라는 뜻으로 정했다. 타라는 같은 말을 세 번 베껴 전령들에게 한 장씩 주었다.
수문까지 가는 길은 허리 아래로 물이 찼다. 물속에는 깨진 항아리와 나뭇조각이 떠다녔다. 아린드라는 앞장서다가 첫 갈림길에서 멈췄다. 오래된 배수로에는 지도에 없는 곁길이 있었고, 횃불은 습기를 먹어 자꾸 작아졌다. 그는 길을 아는 늙은 석공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왼쪽 벽만 밟으십시오. 가운데는 바닥돌이 빠졌습니다.”
노인이 말하자 병사들은 앞사람의 허리띠를 잡았다. 찬물이 상처 난 팔에 닿을 때마다 아린드라의 손가락이 저렸다. 뒤쪽 병사가 미끄러지면 갑옷이 벽을 긁는 소리가 좁은 통로를 울렸다.
타라는 성 안에 남아 창고 사람들을 동쪽 높은 곳으로 옮겼다. 수문을 열면 빠져나갈 물의 방향을 먼저 비워야 했다. 타라는 창고지기에게 곡식 자루부터 옮기겠다는 말을 거두게 하고, 잠든 아이들과 부상자를 먼저 깨웠다. 곡식은 젖으면 잃지만 사람은 물에 휩쓸리면 찾을 수도 없었다.
석공들이 막힌 돌을 걷어 냈다. 수문이 조금 움직이다 멎었다. 아린드라가 힘을 보태려 하자 노인이 그를 밀었다.
“팔의 상처나 벌어집니다. 저 나무 받침을 가져오십시오.”
왕자는 시키는 대로 했다. 지렛대가 내려가고 검은 물이 틈을 뚫었다. 바깥의 공병들이 놀라 뒤로 물러났다. 공격용 가림막 아래로 물이 번졌고, 흙자루로 메운 길 한쪽이 가라앉았다.
그러나 북문에서는 이미 두 번째 빗장이 부러지고 있었다.
코끼리 한 마리가 문에 몸을 붙였다. 기수는 낮고 길게 명령을 반복했다. 뒤쪽에서 창병들이 함성을 질렀다. 세 번째 빗장이 갈라지며 안쪽 흙바닥에 문짝이 쓰러졌다. 파편과 먼지 너머로 코끼리의 머리가 들어왔다.
성 안의 병사들이 흩어졌다. 누구도 무너진 문 앞에 그대로 서 있을 수 없었다. 여왕은 돌계단 위에서 북을 치게 했다. 도망치던 병사들이 약속한 집결지로 돌아섰다. 문 안의 거리는 피란민을 내보내 비워 둔 뒤였다.
북수가 첫 박자를 놓쳤다. 떨어지는 돌에 한쪽 귀가 먹먹해진 탓이었다. 여왕은 그의 어깨를 잡아 자신을 보게 한 뒤 손으로 박자를 그렸다. 북수는 입술을 깨물고 다시 채를 들었다. 둥, 둥, 짧게 한 번. 흩어지던 방패병들이 소리를 알아듣고 담장 아래에 몸을 붙였다.
큰 짐승이 문을 통과한 순간 양쪽 골목에서 방패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코끼리를 창으로 둘러싸려 하지 않았다. 뒤따르는 적의 보병이 넓게 퍼지지 못하도록 골목을 막았다. 겁먹은 코끼리가 머리를 흔들자 기수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아린드라는 배수로에서 올라와 그 장면을 보았다. 그는 곧장 코끼리를 향해 달려들지 않았다. 남쪽 창고의 문을 열게 하고 그쪽으로 빈 길을 남겼다. 기수는 짐승을 돌려 넓은 쪽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적의 선두와 뒤쪽 보병 사이가 벌어졌다.
물에 젖은 아린드라의 옷에서 검은 물이 뚝뚝 떨어졌다. 전령 하나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창을 겨누었다가, 뒤따라온 호위병이 왕실 표식을 들어 보이자 비켰다.
“붉은 깃발을 내려!”
“창고 쪽에 아직 사람이 있습니다.”
“문지기 둘을 보내 확인하고 내려. 사람이 남았으면 지붕으로 올려라.”
전령이 달려갔다. 그 짧은 기다림 동안 적 보병 셋이 문 안으로 더 들어왔다. 아린드라는 조급함에 칼자루를 쥐었지만 명령을 바꾸지 않았다. 곧 창고 지붕에서 흰 천이 흔들렸고, 붉은 깃발이 내려갔다.
“지금!”
다라세나의 군사들이 그 틈을 막았다. 무너진 문을 다시 세울 시간은 없었다. 대신 수레와 돌, 곡식 빈 자루로 낮은 방어선을 만들었다. 여왕은 자신의 호위대를 내려보냈다. 아린드라는 그들과 함께 싸웠다.
수레를 세우는 인부들은 바퀴의 빗장을 뽑아 차축을 땅에 주저앉혔다. 빈 자루에는 무너진 담의 흙을 채웠다. 한 줄을 쌓는 사이 앞줄의 방패 셋이 갈라졌다. 뒤에 선 병사들이 끈을 풀어 온전한 방패를 넘겼고, 다친 사람은 방어선 아래로 기어 나왔다.
그는 잘 싸웠다. 다라세나가 가르친 걸음이 살아 있었고, 상대의 어깨가 움직이기 전에 몸을 옮겼다. 그러나 칼 하나로 전열을 바꾼 것은 아니었다. 뒤에서 방패를 받친 병사와 다친 사람을 끌어낸 인부가 없었다면 그의 걸음도 거기서 끝났을 것이다.
적의 창끝이 그의 뺨을 스쳤다. 아린드라는 반사적으로 앞으로 나가려다가 등 뒤에서 방패를 받치는 숨소리를 들었다. 그는 옆으로 비켜 병사에게 시야를 열어 주었다. 병사의 창이 먼저 나갔고, 아린드라의 칼은 그 창을 피하려는 적의 손목을 쳤다.
“왼쪽을 비우지 마십시오.”
뒤의 병사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왕자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 자기 팔이 더는 버티지 못한다는 알림이었다. 아린드라는 호위 둘을 불러 자리를 바꾸게 했다. 병사는 방패를 놓자마자 주저앉았다. 손바닥 살이 손잡이에 붙어 벗겨져 있었다.
밤이 지나 적군이 물러났을 때, 성문 자리에는 아무 문도 없었다. 아린드라는 바닥에 앉아 숨을 쉬었다. 다라세나는 부러진 창에 기대 서 있었다. 여왕은 사망자 명단을 받았다.
서기는 시신 곁에서 나온 패와 동료들의 증언을 맞추었다. 같은 이름이 둘이면 고향과 부대 이름을 덧붙였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사람 앞에서는 기록관의 붓이 오래 멈췄다. 여왕은 그 줄을 건너뛰지 말고 빈칸으로 남기라고 했다.
“이겼습니까?”
젊은 병사가 물었다.
아린드라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명단 맨 아래에 이름을 묻는 표시가 남아 있는 것을 보았다.
성 밖에서 구원군의 봉화가 올랐다. 말라바의 동쪽 영주들이 드디어 군사를 모아 온 것이었다. 여왕은 봉화를 한참 보다가 아들에게 말했다.
“이제 성 밖의 일을 해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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