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 북쪽, 열 해
열 해 전, 열아홉의 왕자가 북쪽 창고에 점을 찍고 여왕에게 불려 간다.

그 나루가 점 하나로만 있던 때, 왕자는 열아홉이었다.
말라바의 중심 도시 다샤푸라, 그곳의 궁전에는 비가 새는 방이 하나 있었다. 왕자는 그 방을 서고로 골랐다. 물이 떨어지는 곳마다 그릇을 놓고, 그릇을 비울 때마다 책장을 넘겼다. 신하들은 그가 나라의 지붕보다 책의 마른 모서리를 더 걱정한다고 수군거렸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서고지기는 바닥에 마른 모래를 뿌렸다. 타라는 젖은 장부 사이에 얇은 천을 끼우고, 아린드라는 글씨가 번지기 전에 숫자를 옮겼다. 곰팡이 냄새와 등잔 기름 냄새가 섞인 방에서 그는 북쪽 마을들의 우물 깊이를 서로 맞추어 보았다. 같은 해인데도 물이 줄어드는 시기가 한 달씩 달랐다.
“이 장부는 세금 기록입니다.”
타라가 낮게 말했다.
“세금을 못 낸 이유도 기록이지.”
아린드라는 납부하지 못한 집 옆에 찍힌 표식을 따라갔다. 소가 죽은 집, 우물이 마른 집, 나루의 창고가 비어 곡식을 빌린 집. 숫자는 서로 떨어져 있었지만 지도에 놓으면 북쪽으로 이어졌다.
므리날리니 여왕은 그 말을 듣지 않은 척했다. 남편이 죽은 뒤 열두 해 동안 그녀는 직접 국경의 봉화를 살피고 창고의 곡식을 세었다. 어린 아들을 무릎에 올려놓은 채 반역자들의 이름을 읽던 날도 있었다. 이제 아린드라는 열아홉이었다. 어머니의 무릎에 앉을 나이는 지났지만, 어머니가 정한 하루에서는 아직 내려오지 못했다.
여왕이 정한 그의 아침에는 활쏘기, 말 타기, 군례가 차례로 들어 있었다. 아린드라는 활쏘기에는 늦지 않았으나 군례가 끝나기 전에 사라지곤 했다. 보고서를 받던 므리날리니는 빠진 시간까지 알고 있었다. 다만 그가 밤마다 어디에서 목검을 드는지는 알지 못했다.
“오늘도 훈련장에 가지 않았느냐.”
여왕이 들어왔을 때 아린드라는 해묵은 수로 장부를 보고 있었다. 그는 책을 덮지 않았다.
“북쪽 저수지가 예전보다 빨리 마릅니다.”
“물을 묻지 않았다.”
“물 없이는 군마도 못 움직입니다.”
아린드라는 장부를 돌려 보여 주었다. 북쪽 저수지의 준설 인원은 해마다 줄었는데 곡식을 보냈다는 기록은 그대로였다. 여왕은 숫자를 훑고도 손을 뻗지 않았다.
“장부가 틀렸다면?”
“그래서 사람을 보내 확인해야 합니다.”
“맞다면?”
“군마보다 먼저 그곳 사람들이 떠날 겁니다. 빈 나루는 누구든 차지할 수 있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여왕은 더 화가 났다. 아들이 맞는 말 뒤에 숨어 대답을 피한다고 생각했다.
창밖에서는 다라세나 장군의 군사들이 창을 맞추었다. 쇠붙이 부딪는 소리가 서가까지 닿았다. 아린드라는 그 소리가 잠깐 멎는 순간을 들었다. 사람 하나가 넘어지고, 누군가 웃다가, 장군의 고함에 다시 조용해졌다.
므리날리니는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남편이 죽은 뒤 처음 열린 군사 회의에서 장군들은 그녀가 병사 이름을 모를 것이라 여겼다. 그녀는 부상자 명부를 가져오게 해 한 사람씩 가족과 봉급을 물었다. 그 뒤로 누구도 여왕 앞에서 병력을 둥근 수로만 말하지 못했다. 아들에게도 그런 무게를 가르치고 싶었다.
“칼을 다루지 못하는 왕은 남의 칼에 나라를 맡긴다.”
“칼을 다루는 것만 아는 왕도 그렇습니다.”
여왕은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왕에게 말했으면 불경한 대답이었다. 어머니에게 말했으면 아픈 대답이었다. 어느 쪽으로 처벌해야 할지 정할 수 없었다.
“그 남의 칼을 누가 쥐었는지는 알아야 한다.”
“그래서 장부를 봅니다.”
“장부는 네 명령을 듣지 않는다.”
“사람도 명령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빗물이 놋그릇에 떨어졌다. 한 방울씩 일정하던 소리가 두 사람의 말이 끊긴 사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때 문밖에서 서고지기의 딸 타라가 들어왔다. 젖은 책을 옮기던 그녀의 소매에는 검은 얼룩이 번져 있었다.
“왕자님, 북쪽 장부의 마지막 권입니다.”
여왕은 책 밑으로 삐져나온 작은 쪽지를 보았다. 낮은 성문, 빈 창고, 우물 여섯. 아린드라가 직접 그린 지도였다.
지도에는 나루에서 다샤푸라까지 말이 쉬어 갈 곳도 표시되어 있었다. 두 곳에는 먹물을 긁어 낸 흔적이 났다. 이미 폐쇄된 역참이었다. 여왕은 아들이 궁전을 벗어나지 않고도 길의 빈 곳을 찾아냈다는 데 놀랐고, 그것을 자신에게 먼저 보이지 않았다는 데 노했다.
“누가 이것을 시켰느냐.”
“아무도요.”
“그럼 이 숫자는 누가 확인했지?”
“나루의 세금 문서와 마부들의 사료 장부를 맞췄습니다. 다라세나 장군의 행군 기록도 빌렸고요.”
“장군이 내 허락 없이 내주었느냐.”
아린드라는 잠깐 타라를 보았다. 타라가 책임을 나누어 지려는 듯 입을 열었지만 그가 먼저 말했다.
“제가 돌려놓겠다고 약속하고 가져왔습니다.”
그 말은 여왕에게 자랑처럼 들렸다. 그러나 아린드라에게는 부탁이었다. 한 번쯤은 시키지 않은 일을 보아 달라는 부탁.
여왕은 장부를 돌려주었다. 아린드라의 왼손 손바닥에는 굳은살이 있었다. 활을 당기는 자리와 닮았지만, 그녀는 책상 모서리에 쓸린 자국이라고 여겼다.
그녀는 지도를 압수할 수도 있었다. 대신 우물 하나를 손끝으로 눌렀다.
“여섯이라 적었는데 장부에는 다섯이다.”
“하나는 버려진 절 우물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아직 씁니다.”
“대전에서는 장부 밖의 우물도 설명해야 할 것이다.”
“내일 해 뜨기 전에 대전으로 와라.”
여왕이 나간 뒤 타라는 빗물을 받은 그릇을 비웠다. 문이 닫히자 아린드라는 굳은 왼손을 폈다. 어젯밤 목검에 맞은 손목이 푸르게 부어 있었다.
“이번에는 무슨 벌입니까?”
아린드라는 대답 대신 지도에 작은 점을 찍었다. 북쪽 나루의 지붕이 없는 창고였다.
“모르겠어. 하지만 이곳은 사람이 자면 안 돼.”
“대전에 가져갈 지도인데 보내도 됩니까?”
“장군이 먼저 봐야 해. 지붕 없는 창고에 군량을 쌓았으면 비 한 번으로 없어지니까.”
그는 지도를 접어 다라세나 장군 앞으로 보내 달라고 했다. 접힌 선이 북쪽 나루의 점을 지나지 않도록 손톱으로 자리를 잡았다. 타라는 왕자의 얼굴을 보았다. 장난도 자랑도 없었다. 책을 읽는 사람의 얼굴이라기보다, 아직 오지 않은 비를 기다리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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