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 내준 수

대국 이튿날 왕자는 성문을 나서고, 궁 밖에서 맞는 첫날을 기록한다.

성문 밖의 첫날 장면을 인도 세밀화풍으로 그린 삽화
성문 밖의 첫날 장면을 인도 세밀화풍으로 그린 삽화

대국의 이튿날, 왕자는 성문 밖으로 나갔다.

아린드라는 금화가 든 상자보다 책 두 묶음을 먼저 수레에 실었다. 여왕은 출발을 늦추라고 하지 않았다. 날씨가 나쁘다는 말도, 북쪽 소식이 불온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마부에게 차축을 확인시키고 물통을 하나 더 달게 했다.

므리날리니는 짐의 무게를 직접 장부와 맞추었다. 금화 상자에는 궁정 인장이 찍힌 끈을 묶되, 왕자의 생활비와 길에서 치를 통행세를 따로 나누게 했다. 어느 고을에서 얼마를 썼는지 돌아와 묻기 위해서가 아니라, 왕의 아들이 값을 치르지 않고 지나갔다는 말이 남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타라는 여행 기록을 맡기로 했다. 왕자가 부탁하기 전에 여왕이 그녀를 불렀다.

“그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 내게 보고하라는 뜻이 아니다.”

여왕은 봉인하지 않은 편지를 내밀었다.

“아들이 읽은 뒤 보관해 다오.”

타라는 접힌 자리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봉하지 않은 까닭을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명령이라면 왕실 전령이 가지고 갔을 것이다. 이 편지는 왕자가 원할 때 읽고, 원하지 않으면 수레 바닥에 둔 채 갈 수 있어야 했다.

“답장을 재촉할까요?”

“아니다. 답이 없다는 것도 그 아이의 답일 수 있으니.”

편지에는 다섯 줄뿐이었다. 몸을 아끼라는 말,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말, 돌아올 날짜를 미리 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 마지막에는 왕자의 이름 대신 어릴 적 부르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린드라는 마지막 줄을 읽고 종이를 바로 접지 못했다. 어릴 적 이름은 열이 나 밤새 어머니가 곁에 앉았을 때나 듣던 것이었다. 타라가 시선을 돌려 짐끈을 확인하는 동안 그는 편지를 책 두 권 사이에 넣었다.

성문에서는 다라세나가 기다렸다. 그는 왕자에게 장식 없는 검을 주었다.

“길에서는 네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검보다 그걸 먼저 기억해라.”

아린드라는 검을 허리에 찼다. 타라는 이번에야 여왕이 그의 굳은살을 보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여왕은 먼지 이는 길만 바라보았다.

수레가 성문에서 멀어지자 아린드라는 뒤돌아보았다. 길 끝의 어머니는 점점 작아졌고, 그 뒤의 왕궁은 오히려 시야에 온전히 들어왔다. 궁 안에서는 늘 어머니가 궁전보다 큰 사람처럼 느껴졌었다.

성문 바깥 검문대에서는 왕실 수레도 멈췄다. 문지기가 적재 목록을 받아 바퀴 수와 호위 인원을 적었다. 아린드라가 봉인장을 내밀자 문지기의 손이 떨렸다.

“평소대로 하시오.”

문지기는 수레 아래를 막대로 살피고 통행패에 먹을 묻혔다. 그 짧은 절차 동안 뒤에 선 소금 장수의 수레 두 대가 기다렸다. 왕자는 자기 일행이 길 하나를 막는 데도 사람이 멈춘다는 것을 처음 보았다.

첫날 밤 그들은 객주에서 방을 얻지 못했다. 왕자의 봉인장을 꺼내면 주인이 제 방을 비워 줄 수 있었지만 아린드라는 마구간 옆에 자리를 폈다. 늙은 상인 바르다나가 그 곁에 앉았다.

“귀한 사람이 싸구려 잠을 자는군.”

“돈을 아끼려고요.”

“아끼는 돈이 네 돈인지 먼저 따져 보았느냐?”

아린드라가 입을 다물자 상인은 낡은 놀이판을 꺼냈다. 말이 몇 개 부족해서 돌멩이를 대신 썼다. 궁정의 말과 걸음이 조금 달랐다. 아린드라는 규칙부터 물었다.

바르다나는 왕자의 옷감과 검을 한 번 보고도 신분은 묻지 않았다. 대신 금화 한 닢으로 몇 끼를 살 수 있는지 물었다. 아린드라가 궁정 장부의 값을 말하자 상인은 혀를 찼다.

“그 값은 창고 문 안쪽 값이네. 여기까지 수레를 끈 소와 길에서 상한 자루 값은 빠졌군.”

그는 낮에 판 염료 꾸러미의 매입가와 객주세, 나루에서 낸 돈을 손가락으로 꼽았다. 타라는 빈 장부 귀퉁이에 숫자를 옮겼다. 같은 물건도 길을 건너면 값이 달라지는 까닭이 처음으로 한 줄 안에 모였다.

“우리 고장에서는 코끼리가 이쪽으로 움직이네. 싫으면 안 둬도 좋고.”

“배우겠습니다.”

아린드라는 첫 판을 졌다. 바르다나는 그의 왕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네가 아는 길로만 남도 움직일 줄 알았지?”

왕자는 돌멩이로 대신한 말을 들었다.

“이 말은 무엇입니까?”

“오늘은 신하고, 어제는 코끼리였지. 모자라면 있는 것으로 두는 걸세.”

궁정에서는 케샤바가 말의 모양과 길을 정확히 맞췄다. 여기서는 깨진 기왓조각도 규칙에 동의한 두 사람 사이에서 군사가 되었다. 아린드라는 두 번째 판을 청했지만 바르다나는 내일 장터에 나가야 한다며 판을 접었다.

타라는 그 말을 적었다. 궁정에서 승리한 날보다 왕자가 오늘 더 많은 말을 했다는 것도 적었다.

새벽에 객주를 떠날 때 아린드라는 방값 대신 마구간 지붕 고치는 일을 도왔다. 어깨가 결렸고 책 읽을 시간이 줄었다. 그러나 수레에 오른 뒤 그는 수로 장부를 다시 펼쳤다. 장부 속의 하루 품삯이 전날보다 큰 숫자로 보였다.

지붕에 올릴 짚단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객주 주인은 썩은 부분을 걷어 낸 뒤 새 짚을 얹고 진흙을 눌러야 한다고 가르쳤다. 아린드라가 서두르다 한쪽을 두껍게 올리자 빗물이 고인다며 다시 펴게 했다.

일이 끝나자 주인은 동전 두 닢을 돌려주었다. 품삯을 뺀 값이었다.

“왕자님 손이라고 지붕이 오래 버티지는 않소.”

그가 신분을 알면서도 밤새 모른 척했다는 것을 아린드라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는 동전을 받았다. 받지 않는 것도 값을 자기 마음대로 정하는 일이었다.

수레 위에서 아린드라는 수로 장부의 인부 수 옆에 짚단을 나른 시간을 적어 보았다. 장부에는 하루라고만 되어 있었다. 누구의 하루인지, 도구를 가져오는 시간이 포함되는지 알 수 없었다. 마가다에 가서 물을 첫 질문이 생겼다.

바르다나는 서쪽으로, 왕자의 수레는 북동쪽으로 갈라졌다. 상인이 외쳤다.

“돌아오면 한 판 더 두세!”

아린드라는 손을 흔들었다. 누구도 그를 폐하라고 부르지 않는 길에서, 그는 처음으로 신분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인사를 건넸다.

갈림길이 멀어진 뒤 타라는 여왕의 편지 아래에 첫날의 지출을 적었다. 통행세, 말 먹이, 돌려받은 동전 두 닢. 마지막에는 객주의 규칙으로 둔 대국에서 왕자가 졌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