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 내준 수
왕위에 앉은 밤, 아린드라는 궁을 떠난 첫해 어머니와 주고받은 편지를 떠올린다.

왕위에 앉은 밤, 그는 떠난 첫해의 편지를 떠올렸다. 요새가 함락되었다는 편지와는 다른 글이었다.
그 편지를 쓰던 때로 돌아가면, 마가다를 향한 길은 아린드라가 지도에서 짚었던 선보다 길었다. 낡은 다리는 강물에 잠겼고, 두 마을은 서로 다른 이름으로 같은 나루를 불렀다. 길잡이와 다투다가 타라가 먼저 수레에서 내렸다.
길잡이는 북쪽 나루가 가깝다고 했고 지도에는 남쪽 나루만 표시되어 있었다. 아린드라는 지도 제작자의 이름을 근거로 들었다. 길잡이는 지난 장마에 강줄기가 바뀐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수레바퀴가 진흙에 반쯤 빠졌다. 호위들이 밀어도 바퀴는 헛돌았다. 타라는 신발을 벗고 물가까지 걸어가 막대기로 깊이를 쟀다. 종아리에 차던 물이 몇 걸음 뒤 허벅지까지 올라왔다.
“지도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왕자는 그 말을 들은 뒤에야 책을 접었다.
건넌 뒤 타라는 지도 여백에 새 물길과 나루의 두 이름을 함께 적었다. 어느 마을의 이름만 옳다고 고르지 않았다.
그들이 머문 배움의 집에는 서로 다른 고장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다. 경전을 외우는 사람과 수를 계산하는 사람, 약초를 말리는 사람이 같은 우물을 썼다. 왕자는 그곳에서 바수미트라라는 스승을 만났다. 스승은 왕자의 소개장을 읽고도 좋은 방을 내주지 않았다.
왕자가 가져온 책은 서고의 책과 바꾸어 읽을 수 있었지만 왕실 소유라는 표식을 먼저 지워야 했다. 바수미트라는 빌린 사람이 겁내지 않고 여백에 틀린 곳을 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아린드라는 칼끝으로 밀랍 표식을 긁어 냈다.
“여기서 무엇을 얻으러 왔느냐?”
“나라를 다스릴 지식을요.”
“그러면 오늘은 부엌에 가거라. 네가 먹을 쌀이 얼마나 드는지부터 알아라.”
아린드라는 처음에 그 말이 시험인 줄 알았다. 사흘이 지나도 시험은 끝나지 않았다. 곡식 자루를 나르고, 벌레 먹은 낟알을 골라내고, 열이 난 학생의 물을 갈았다.
부엌 책임자는 마른 쌀과 불린 쌀의 무게가 다르다는 것부터 보여 주었다. 한 되를 씻으면 물과 함께 흘러가는 낟알이 생겼고, 솥바닥에 붙은 몫은 그릇 수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린드라가 자루 수만 세자 그는 쥐가 갉은 구멍을 가리켰다.
열이 난 학생은 물에서 쇠 맛이 난다며 고개를 돌렸다. 아린드라는 억지로 먹이려다 타라에게 손목을 잡혔다. 타라는 입술을 적신 뒤 작은 숟가락으로 나누어 먹였다. 왕자는 그 속도를 기억했다.
나흘째 스승이 물었다.
“군사 천 명을 한 달 먹이려면?”
왕자는 셈을 했다. 스승은 고개를 저었다.
“짐꾼은 안 먹느냐. 코끼리는 풀을 안 먹느냐. 비를 맞은 쌀은 장부에 적힌 만큼 남아 있느냐.”
아린드라는 답을 지웠다.
바수미트라는 맞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다음 날 시장에 가서 같은 양을 실제로 사 오게 했다. 상인은 저울추가 닳았다며 값을 깎지 않았고, 운반꾼은 계단이 많다며 품삯을 더 받았다. 종이 위에서 같던 수가 사람의 입을 거치며 달라졌다.
낮에는 수와 의술을 배웠다. 새벽에는 이웃 마을의 궁수에게 활을 배웠다. 궁수는 왕자가 장군에게 배웠다는 말을 듣고도 과녁을 가까이 놓았다.
“사람은 멀리 있는 적에게 쏘려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맞히기도 한다. 가까운 것부터 보아라.”
두 달 뒤 아린드라는 움직이는 짚단을 맞혔다. 석 달 뒤에는 맞힐 수 있어도 쏘지 않는 연습을 했다. 사람 역할을 하는 학생이 과녁 앞으로 뛰어들면 활을 낮추어야 했다.
처음 사람 그림자가 튀어나왔을 때 화살은 이미 손을 떠났다. 과녁 앞에 매단 빈 항아리가 깨졌다. 실제 사람은 아니었지만 깨진 소리가 난 뒤에도 왕자의 귀에서는 활시위가 떨렸다.
“맞히지 않았으니 됐습니까?”
궁수는 고개를 저었다.
“네가 멈춘 것이 아니라 늦은 것이다.”
그 뒤 아린드라는 화살을 놓는 손보다 거두는 손을 더 오래 익혔다. 팔이 떨려도 시위를 천천히 풀었다. 다라세나에게 검을 배울 때는 망설임을 버리라고 들었지만, 여기서는 망설일 때를 고르는 일이 훈련이었다.
타라는 그 옆에서 치료법을 적었다. 기록할 책이 부족해지자 그녀는 궁정 대국의 뒷면에 글을 썼다. 왕자가 전차를 잃은 자리 뒤에는 부러진 뼈를 고정하는 그림이 생겼다.
아린드라는 자기 패배가 적힌 종이를 잘라 쓰자고 했지만 타라는 자르지 않았다.
“앞면과 뒷면이 함께 있어야 언제 적었는지 압니다.”
기보의 수와 치료 기록은 그렇게 같은 구멍으로 실에 꿰였다.
어느 저녁 아린드라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자신이 배운 내용과 새벽 훈련을 적었다가, 마지막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저는 전부터 검을 배웠습니다.’
그는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편지를 보내고 나서야 손이 떨렸다. 허락받는 것보다 사실을 말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편지는 마가다를 떠나는 향신료 상인의 짐에 맡겼다. 그는 첫 장터에서 직물 수레에 넘겼고, 직물 상인은 강가 역참의 관리에게 맡겼다. 봉인을 인수한 사람의 이름이 끈에 매달렸다. 한 달이 걸린 것은 길이 멀어서만이 아니었다.
답장은 한 달 뒤에 왔다. 여왕은 훈련을 숨긴 일에 화가 났다고 썼다. 동시에 낮의 훈련에서 누구도 왕자를 제대로 상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신이 살피지 못했다고 썼다.
므리날리니는 답장의 초고에 당장 돌아오라는 문장을 썼다가 지웠다. 지운 잉크가 종이 섬유에 남았다. 대신 다라세나를 불러 과거 훈련 일지를 확인했다. 왕자가 다친 날마다 상대가 먼저 물러났다는 기록을 본 뒤, 같은 답장을 처음부터 다시 썼다.
편지와 함께 새 활이나 호위병은 오지 않았다. 상처에 바를 연고 한 통만 들어 있었다. 뚜껑에는 왕실 문양 대신 약방 이름이 찍혀 있었다.
마지막 줄은 짧았다.
‘다치거든 감추지 마라.’
왕자는 편지를 두 번 읽었다. 그날 밤에는 서고의 빗물 소리가 꿈에 나왔다. 꿈속에서 어머니는 그릇을 하나씩 비우고 있었다.
깨어난 뒤 그는 손바닥의 굳은살이 터진 것을 편지 여백에 적었다. 다음 답장에 넣을 생각이었다. 전 같으면 다 나은 뒤에야 말했을 상처였다.
왕위에 앉은 밤의 아린드라는 그 짧은 덧글까지 다시 읽었다. 국새를 쥔 손에는 오래된 굳은살이 남아 있었다. 그는 곡식 문서 옆에 편지를 놓고, 다친 사람의 수를 아침 보고에서 따로 읽게 하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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