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 내준 수

판이라면 내줄 작은 말을, 왕자는 아이 앞에서 내주지 않는다.

책에 없는 승리 장면을 인도 세밀화풍으로 그린 삽화
책에 없는 승리 장면을 인도 세밀화풍으로 그린 삽화

인질들이 무너진 벽 앞에서 멈췄다. 그들 뒤의 적군은 활을 들었지만, 앞의 말라바 군대도 길을 열지 않았다. 사이에 선 아이 하나가 울기 시작했다. 울음소리가 돌벽에 부딪혀 커졌다.

다라세나는 왕자에게 다가왔다.

“서문으로 나가는 기병을 놓치면 다시 싸워야 한다.”

아린드라는 그 사실을 알았다. 판이었다면 작은 말을 내주고 큰 말을 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다음 판에 돌아오지 않았다.

난다가 마탕가의 귀 뒤를 쓸었다. 성문을 세 번 받은 짐승의 앞발에서는 피와 젖은 흙 냄새가 났다. 코끼리를 한 걸음 더 밀면 적병은 물러날지 몰랐다. 그 한 걸음에 인질들도 밟힐 수 있었다.

“추격대는 얼마나 기다릴 수 있습니까?”

“기다릴수록 말 한 마리 길이씩 늦어진다.”

“길을 엽니다.”

그는 직접 앞으로 나갔다. 방패병 둘이 따라왔다. 적의 궁수가 활을 더 당겼다. 왕자는 검을 칼집에 넣고 빈손을 들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빈손은 보였다.

인질을 묶은 병사 하나가 주춤했다. 아린드라는 그를 향해 물통을 굴렸다. 시간이 길어졌다. 서문 밖에서는 말발굽 소리가 멀어졌다.

물통은 돌에 부딪혀 멈췄다. 병사는 활을 든 동료를 보고 발끝으로 그것을 끌어당겼다. 아린드라는 밧줄을 가리킨 뒤 자기 검을 땅에 놓았다. 손목을 모아 묶인 시늉을 하고 다시 벌렸다. 아이의 울음은 숨 넘어가는 소리로 바뀌었다.

다라세나의 기병들은 고삐를 당긴 채 서 있었다. 말들이 입에 문 쇠를 씹는 소리와 거친 숨이 들렸다. 누구도 출발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마침내 그 병사가 밧줄을 잘랐다. 다른 병사가 욕을 했지만 아이가 달려나오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말라바 방패병들이 사람들을 받아 뒤로 보냈다. 가장 늦게 나온 노인은 다리를 끌었다. 아린드라는 그를 부축하다 등 뒤에 둔한 충격을 받았다. 방패병이 막은 화살이었다.

노인의 몸은 보기보다 무거웠다. 굶은 사람에게서는 땀보다 마른 짚 같은 냄새가 났다. 노인이 발을 헛디딜 때마다 아린드라는 그의 팔을 자기 어깨 위로 더 끌어올렸다. 두 번째 화살이 돌에 맞아 부러졌다.

요새 안의 병사들은 더 버티지 않았다. 바흐람이 떠난 뒤 남은 지휘관이 창을 내려놓았다. 곡식 자루와 물동이, 부상당한 짐승들이 공격군에게 넘어왔다.

다라세나는 무기를 한곳에 쌓게 하고 곡식 창고에는 양쪽 병사 두 명씩을 세웠다. 약탈이 시작되면 인질을 구한 일이 바로 다른 굶주림으로 바뀔 수 있었다. 타라는 문짝에 남은 봉인과 자루 수를 받아 적었다.

왕자는 바흐람을 놓쳤다. 군사 몇몇이 그를 원망했다. 그는 변명하지 않았다. 치료소에 인질이 모두 들어갔는지 확인하고 나서 지도를 폈다.

구해 낸 사람은 스물일곱이었다. 장부에는 스물여덟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린드라는 숫자가 맞을 때까지 다시 세게 했다. 빠진 한 사람은 공격 전날 열병으로 죽어 우물 곁에 묻혔다. 물통을 받았던 병사가 새 흙이 덮인 자리를 가리켰다.

“살아 있는 사람만 맞추고 끝낼 수는 없습니다.”

타라는 스물여덟 번째 줄 옆에 죽은 때와 묻힌 곳을 적었다. 그제야 왕자는 지도 앞으로 갔다.

바흐람의 기병이 갈 수 있는 길은 둘이었다. 북서쪽 큰길은 빠르지만 연합군이 지키고 있었다. 동쪽 고갯길은 좁고 물이 적었다. 아린드라는 포로로 잡았던 젊은 병사를 불렀다. 그 병사는 귀환길 이후 치료소 일을 돕고 있었다.

왕자는 지도 위에 물통을 놓고 손짓했다. 병사가 한곳을 가리켰다. 계절에 따라 마르는 우물이었다. 아린드라는 왕궁 장부에서 그 이름을 본 적이 있었다.

젊은 병사는 처음에는 입을 열지 않았다. 자기가 알려 준 길로 추격했다가 사람이 죽으면 책임이 돌아올까 두려운 얼굴이었다.

“그들이 아니라 네가 다니던 길을 말해 다오. 틀리면 틀렸다고 적겠다.”

병사는 비가 적은 해에는 바닥의 진흙을 걷어 내야 물이 찬다고 했다. 왕궁 장부에는 우물 청소에 은전을 지급했다는 줄이 있었다. 그 아래에는 일이 끝났는지 확인한 기록이 없었다.

다라세나는 정찰병 둘을 먼저 보냈다. 해가 중천에 오르기 전에 한 명이 돌아왔다. 말 서너 마리가 마실 물밖에 없었고 바흐람의 선두가 고개로 향했다. 아린드라는 젊은 병사에게 자유인의 표식을 내주게 했다. 정보의 값이었고, 뒤늦게 지킨 귀환길의 약속이었다.

바흐람의 기병이 그 우물에 닿았을 때 말들이 먼저 지쳤다. 말라바 군대가 길을 막아 기다리고 있었다. 아린드라는 부대를 둘로 나누되 보이지 않는 곳으로 너무 멀리 보내지 않았다. 코끼리들은 전날 다쳐 후방에 남았고, 이번에는 보병의 방패와 기병의 측면 공격이 전장을 만들었다.

다라세나는 기병을 바위 뒤에 감췄다.

“너무 일찍 나오면 놈들이 큰길로 돌아선다.”

“제 깃발이 두 번 내려갈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바흐람이 돌격했다. 왕자는 가장 단단한 가운데를 조금 물리고 양쪽의 길을 닫았다. 적의 선두가 안으로 들어온 뒤 뒤쪽의 말들이 서로 부딪쳤다. 다라세나의 기병이 옆을 쳤고, 말라바의 창병들이 더 좁은 길로 밀어냈다.

첫 줄이 물러날 때 창병 하나가 넘어졌다. 뒤의 병사가 그를 밟지 않으려고 틀면서 방패 사이가 벌어졌다. 아린드라는 예비대에게 그 틈만 메우게 했다. 전열 전체를 밀지 않았다.

깃발이 두 번째 내려갔다. 기다리던 말들이 바위 뒤에서 튀어나왔다. 다라세나는 적의 뒤를 완전히 막지 않고 물 없는 비탈 쪽으로 좁은 퇴로를 남겼다. 달아날 길이 보이자 무기를 버리는 자들이 생겼다.

아린드라는 바흐람과 마주쳤다. 그는 상대의 첫 칼을 막고 두 번째에는 물러섰다. 다라세나에게 수백 번 맞았던 어깨를 이번에는 내주지 않았다. 왕자가 손목을 밀자 바흐람의 칼이 돌바닥에 떨어졌다.

바흐람은 빈손으로도 왕자의 허리띠를 잡았다. 발밑에서 자갈이 흘렀다. 아린드라는 칼끝을 목으로 올리는 대신 팔꿈치로 그의 팔을 눌렀다. 뒤따라온 병사들이 바흐람의 손목을 묶었다.

“나를 죽이면 끝날 일을 길게 만드는군.”

통역이 옮기자 아린드라는 숨을 고르고 말했다.

“끝났는지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정할 것이다.”

전투는 그 한 번의 대결로 끝나지 않았다. 부대마다 무기를 버리는 데 한참이 걸렸다. 해가 기울 때야 고개가 조용해졌다.

타라가 왕자를 찾았을 때 그는 쓰러진 적군의 물통을 채우고 있었다. 그녀는 승전 기록을 펼쳤다.

“대승이라고 적어도 되겠습니까?”

“적어. 잡은 군사와 되찾은 요새도.”

그가 덧붙였다.

“우리 쪽 이름도 빼지 마.”

“어느 이름부터 적을까요?”

아린드라는 고개 아래를 보았다. 마탕가의 발을 씻기는 난다, 부러진 방패를 모으는 보병들, 항복한 적에게 물을 나르는 사람들이 한곳에 섞여 있었다.

“벽 아래를 판 공병들부터. 우물을 알려 준 병사와 인질들의 수도. 죽은 사람은 죽었다고 적고.”

“전하께서 추격을 멈춘 일은요?”

그는 물통의 마개를 쥐었다.

“그것도 빼지 마. 그래서 바흐람을 늦게 잡았다고.”

타라는 새 종이를 꺼냈다. 빈 종이를 준 스승의 뜻을 그제야 알 것 같았다.

타라는 첫 줄의 ‘대승’ 뒤에 인질 스물여덟 명을 썼다. 그중 한 명은 돌아오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해가 산 너머로 내려가 글씨는 흐려졌지만 그 줄을 비워 두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