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 · 성문과 판

대국을 사흘 앞둔 새벽, 왕자는 전차를 내주고 보병을 민다.

새벽의 작은 판 장면을 인도 세밀화풍으로 그린 삽화
새벽의 작은 판 장면을 인도 세밀화풍으로 그린 삽화

열 해 전, 어머니와 대국을 치르기 사흘 전 새벽이었다. 여왕은 그때까지 아들이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아린드라는 그날 밤에도 서고에 불을 켜 두었다. 대신 자신은 서고에 없었다. 타라가 돌아왔을 때 그의 의자에는 망토가 걸려 있었고, 책상 위에는 비를 받는 그릇 하나가 뒤집혀 있었다. 늘 훈련장에서 들리던 박자가 궁전 뒤쪽에서 작게 울렸다.

타라는 등잔 심지를 낮추고 복도로 나왔다. 당직 시종이 지나가며 열린 문 안을 보았지만, 의자에 걸린 망토만 보고 고개를 숙였다. 왕자가 책을 읽다 잠든 것으로 여긴 모양이었다. 타라는 맨발에 가까운 걸음으로 소리를 따라갔다. 젖은 돌바닥이 발바닥을 차게 밀어 올렸다.

버려진 마구간에서 다라세나 장군이 목검을 들고 있었다. 왕자는 무릎을 굽힌 채 장군의 손목을 보고 있었다.

“또 손끝만 본다.”

장군이 칼을 휘둘렀다. 아린드라는 막았지만 발이 늦었다. 어깨를 맞고 짚더미에 넘어졌다. 타라는 문턱에서 숨을 삼켰다.

목검이 살을 때린 소리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마른 짚 냄새 사이로 말이 떠난 지 오래된 마구간의 오줌 냄새가 남아 있었다. 아린드라는 맞은 어깨를 감싸지 않았다. 먼저 목검을 찾고, 한쪽 무릎을 세워 몸을 일으켰다.

“대승을 하실 분이 여기에 누워 계십니까?”

아린드라가 일어나며 먼지를 털었다.

“여기서 지면 목숨은 안 잃으니까.”

“지금은 그렇지.”

다라세나는 왕자의 오른발을 목검 끝으로 밀었다.

“하지만 넘어질 자리를 네가 고를 수 있다고 믿지는 마라. 벽이 있을 수도 있고, 네 뒤에 다른 병사가 있을 수도 있다.”

아린드라는 발을 반 뼘 옮겼다. 이번에는 칼을 막은 뒤 앞으로 버티지 않고 비켜섰다. 장군의 어깨가 스치는 순간 팔꿈치로 등을 밀었지만, 다라세나는 두 걸음 만에 돌아서서 왕자의 옆구리에 칼끝을 댔다.

“상대가 넘어진 것을 확인하기 전에 등을 보였다.”

“장군께서는 너무 빨리 돌아섭니다.”

“적에게도 그렇게 항의할 셈이냐?”

그는 열다섯 살부터 다라세나에게 배웠다. 처음에는 여왕의 일정대로 훈련했다. 그러나 공개 훈련에서는 누구도 왕자를 제대로 때리지 않았다. 다라세나는 그에게 넘어지는 법을 가르치려고 밤을 골랐다. 아린드라는 낮에 서고로 돌아갔고, 궁정은 보고 싶은 부분만 보고 그를 책벌레로 불렀다.

“왜 여왕께 말씀하지 않습니까?”

타라의 물음에 다라세나는 목검을 세워 두었다.

“처음에는 자기가 이길 때 말하겠다고 했지. 그다음에는 말을 안 하는 게 습관이 됐다.”

아린드라의 얼굴이 붉어졌다.

“어머니가 제 공부를 전부 전쟁 준비라고 부르실까 봐 겁났어.”

“그래서 네 어머니는 네가 아무 준비도 하지 않는다고 믿게 됐고.”

장군의 목소리는 낮았다. 아린드라는 반박하지 못했다.

그들은 칼을 내려놓고 작은 판을 폈다. 다라세나는 왕자의 전차를 먼저 잡았다. 아린드라는 잃은 말을 바라보다가 보병을 앞으로 밀었다.

판은 포대 자루 위에 놓였다. 바닥이 고르지 않아 짙은 왕이 조금 기울었다. 아린드라는 접은 천을 판 모서리 아래에 끼우고서야 다음 수를 두었다. 다라세나는 기다려 주었지만 손가락으로 무릎을 두드렸다. 목검 훈련 때와 같은 박자였다.

“검을 쥐어도 이런 식으로 싸울 거냐. 큰 칼 하나를 내주고?”

“사람은 이렇게 못 내줍니다.”

“그런데 왜 판에서는 내주지?”

아린드라는 한동안 생각했다.

“판의 말은 다음 판에 돌아오니까요.”

다라세나는 흰 보병을 다시 제자리에 놓았다.

“그 차이를 잊지 않으면 네 책도 쓸모가 있겠지.”

“잊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름을 알아야지. 네 앞줄에 누가 섰는지, 다친 뒤 누가 그 집에 곡식을 가져갈지.”

다라세나는 방금 잡은 전차를 손바닥에 올렸다.

“판에서는 이 말이 소리도 없이 사라진다. 전장에서는 갑옷 끈이 끊어지는 소리까지 남는다.”

아린드라는 보병 하나를 만지다가 손을 거두었다. 다음 판에서는 전차를 쉽게 내주지 않았다. 그 때문에 길이 막혀 더 빨리 졌다.

새벽이 올 때까지 아린드라는 세 번 졌다. 타라는 대국을 받아 적다가 마지막 장에 훈련 날짜를 적었다. 아린드라는 그 장을 찢어 달라고 하지 않았다.

“어머니께 보여 드릴 거야?”

타라가 물었다.

“언젠가는.”

“언제가 날짜라면 적겠습니다.”

아린드라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타라는 날짜 옆을 비워 두었다. 말하지 못한 약속까지 지어내 기록할 수는 없었다.

마구간 밖에서 물 긷는 소리가 났다. 늙은 마부가 양동이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북쪽 나루에서 왔습니다. 왕자님이 보내신 말대로 지붕을 보수했다더군요.”

아린드라는 안도했다. 그리고 곧 얼굴을 굳혔다.

“왜 지금 오셨습니까? 나루의 말들은 누가 돌봅니까?”

“군인들이 데려갔습니다. 강 건너에서 사신이 왔다고.”

마부의 손등에는 젖은 고삐가 쓸고 간 붉은 자국이 있었다. 그는 사신의 봉인을 보지는 못했다고 했다. 나루의 군인들은 왕궁 명령서도 내보이지 않았다. 그저 새벽 전에 가장 빠른 말 여섯 필을 골라 강 쪽으로 끌고 갔다.

다라세나가 아린드라를 보았다. 강 건너 북쪽에는 후나계 군벌 바흐람의 세력이 뻗어 있었다. 사신이 말을 타고 오는 것과 나루의 말들을 징발하는 것은 같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누가 군인들을 지휘했습니까?”

아린드라가 묻자 마부는 투구에 감긴 붉은 천과 말안장의 문양을 설명했다. 다라세나는 어느 변경대의 표식인지 알아들었다.

“대전 당직이 바뀌기 전에 여왕께 알려야 한다.”

장군이 판의 말들을 자루에 쓸어 담았다. 아린드라는 자기 전차를 집어 따로 넣으려다가, 다른 말들과 함께 자루 안에 놓았다. 타라는 훈련 기록 위에 마른 종이를 덮었다.

셋은 아직 어두운 회랑으로 돌아갔다. 서고의 등불은 꺼지지 않은 채였다. 아린드라는 의자에서 망토를 걷어 어깨에 둘렀다. 맞은 곳에 천이 닿자 얼굴이 잠깐 굳었지만, 그는 곧 대전 쪽 문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