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 내준 수

전쟁이 끝난 뒤, 대국의 기록이 상인의 짐이 되어 서쪽으로 떠난다.

페르시아로 가는 사본 장면을 인도 세밀화풍으로 그린 삽화
페르시아로 가는 사본 장면을 인도 세밀화풍으로 그린 삽화

전쟁은 끝났고, 판은 사람들의 짐 속에 남았다.

아린드라가 왕이 된 뒤 타라는 전쟁과 대국을 한 권에 묶었다. 케샤바의 말 그림을 넣고, 마탕가의 발 상처를 치료한 기록도 넣었다. 수바후는 그것들이 서로 다른 책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타라는 먼저 궁정 서고와 군량 창고, 치료소에 흩어진 종이를 모았다. 같은 날을 기록한 문서도 서로 달랐다. 군량 장부에는 떠난 병사의 수가 있었고 치료소 장부에는 돌아온 사람의 이름이 있었다. 어느 쪽도 버리지 않고 차이가 나는 줄에 작은 점을 찍었다.

진흙이 묻은 전령 쪽지는 햇볕에 펴면 갈라졌다. 타라는 젖은 천 사이에 두었다가 나무판으로 눌렀다. 피가 번져 읽히지 않는 곳은 다른 사람의 기억으로 채우지 않았다. 빈칸 옆에 읽을 수 없다고 적었다.

“군사서는 군사서답게 써야 한다.”

타라는 대국의 기보를 펼쳤다. 뒷면에는 치료 그림이 남아 있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쓰였습니다.”

아린드라는 책을 나눌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는 본문에 자기 이름이 너무 자주 나오는 대목만 지웠다. 다라세나가 가르친 것, 난다가 멈춘 것, 창고를 옮긴 사람들의 일을 더 넣게 했다.

초고를 읽는 자리는 대전이 아니라 창고 앞 회랑에 마련했다. 글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서기관이 소리 내어 읽었다. 자기 일이 다르게 적혔다고 말하면 타라는 언제, 누구와 있었는지 다시 물었다. 왕에게 불리한 말도 같은 방식으로 확인했다.

아린드라는 인질을 두고 추격을 멈춘 대목에서 오래 머물렀다.

“내가 옳았다고 결론 내리지 마라.”

“결과는 바흐람을 잡은 것으로 끝납니다.”

“그 사이 죽을 수도 있었던 사람도 적어.”

타라는 늦어진 시간과 두 번째 전투의 사망자 수를 그 장 끝에 붙였다.

마지막 장에는 요새 함락 소식을 담은 여왕의 짧은 편지가 실렸다. 아들에게 돌아오라고 명령하지 않았던 편지였다. 므리날리니는 자신이 고른 말들을 다시 읽고 조용히 허락했다.

허락은 말로만 받지 않았다. 편지는 어머니가 아들에게 쓴 것이어서 왕실 기록이라 해도 함부로 베낄 수 없었다. 타라는 원문을 돌려주고 사본의 마지막 줄 아래에 므리날리니가 열람과 필사를 허락한 날짜를 적었다.

타라는 편지 앞에 함락 보고와 발송 날짜를 나란히 적었다. 출발 때 받은 다섯 줄 편지는 여행 기록에 그대로 두어 두 편지가 섞이지 않게 했다. 필사공들에게는 문서가 바뀌는 자리마다 여백에 두 줄을 긋게 했다.

타라는 책 제목을 《놓아준 수》라고 붙였다.

제목이 정해진 뒤 필사공 셋이 정본을 만들었다. 한 사람이 읽고 두 사람이 받아 쓴 다음 글자를 대조했다. 숫자와 이름은 다시 읽고, 케샤바의 그림은 먹가루로 옮겼다. 정본은 왕실 서고와 배움의 집에 두고 나머지는 값을 받고 베끼게 했다.

바르다나가 다샤푸라에 다시 왔을 때 그의 머리는 전보다 희어져 있었다. 객주의 판을 꺼내며 그가 말했다.

“이번에는 정말 왕이 되었군.”

“그때도 왕의 아들이었습니다.”

“내가 만난 것은 돈 아끼는 청년이었네.”

그들은 다시 두었다. 바르다나는 자기 고장의 코끼리 걸음을 지켰고, 아린드라는 규칙을 확인한 뒤 앉았다. 타라는 두 사람 사이에서 사본 하나를 묶었다.

바르다나는 책의 무게를 손바닥으로 가늠했다.

“종이도 길에서는 상품이네. 젖으면 값이 사라지고, 마르면 낙타 한 마리 몫을 차지하지.”

타라는 책값을 묻는 그에게 종이와 필사 품삯을 합친 수를 보여 주었다. 왕의 이야기를 전한다는 이유로 공짜로 가져가게 하면 필사한 사람의 품삯이 없어졌다. 바르다나는 값을 치르되, 서쪽에서 팔린 뒤 남는 몫 일부를 다음 사본 제작에 보내기로 했다.

바르다나는 서쪽으로 가는 상품에 그 책을 넣었다. 왕의 명령으로 모든 나라에 놀이를 퍼뜨리는 사절은 아니었다. 읽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값을 받고 팔 생각이었다. 도시 성문마다 그는 상품 목록과 상자의 봉인을 함께 보여 주었다.

첫 도시의 놀이꾼들은 글보다 판을 원했다. 바르다나는 객주 바닥에 선을 긋고 책의 그림을 보여 주었다. 사람들은 규칙을 듣되 왕자의 이름은 기억하지 않았다. 그는 책을 팔지 못하고 구경시킨 값으로 말 먹이만 받았다.

사막 가장자리에서는 대상에 합류했다. 물값과 길 안내 삯은 사람 수가 아니라 짐승 수로 냈다. 밤마다 상자 봉인을 확인했지만 모래는 천 틈으로 들어왔다. 한 역참에서 비를 만나 표지 가장자리가 젖자 바르다나는 상품용 천 한 폭을 잘라 다시 감쌌다.

페르시아에 도착했을 때 사본의 천 표지는 닳아 있었다. 역참에서 만난 서기관 파르하드는 인도말을 조금 알았다. 그는 왕자의 전투보다 작은 판의 규칙에 먼저 관심을 보였다.

값은 은의 무게로 정했다. 파르하드는 번역을 마치기 전 전부 낼 수 없어 절반을 먼저 주고, 나머지는 필사본 한 권으로 갚기로 했다. 역참 주인이 두 사람의 약속을 장부에 적었다. 책은 왕의 선물이 아니라 그 거래를 거쳐 파르하드의 책상으로 갔다.

“여기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이들도 있습니다.”

바르다나가 어깨를 으쓱했다.

“내 고장에서도 저 왕의 고장과 달랐네.”

파르하드는 책을 번역했다. 왕은 샤가 되었고, 신하는 다른 이름을 얻었다. 코끼리 그림은 남았지만 몇몇 말의 걸음은 자기가 아는 놀이에 맞추어 주석으로 따로 달았다. 원문과 다른 부분은 줄을 그어 표시했다.

전투의 지명은 소리대로 옮겼지만 곡식 단위는 현지 독자가 아는 무게로 환산했다. 정확히 맞지 않는 수에는 ‘대략’이라는 말을 붙였다. 왕자의 승리를 더 크게 보이게 하려고 숫자를 올리지는 않았다.

놀이말의 이름을 바꾸는 일은 더 까다로웠다. 이름만 옮기면 독자는 자기 판의 움직임으로 이해했다. 파르하드는 코끼리 말 옆에 원문의 걸음을 그림으로 그리고, 자기가 아는 규칙은 다른 색 먹으로 달았다. 두 판이 하나였다고 보이지 않게 하려는 구분이었다.

그는 므리날리니의 이름 앞에서 오래 멈췄다. 자기 말로 옮기기 쉽지 않았다. 이름을 버리고 ‘어머니’라고만 적을까 하다가, 소리가 나는 대로 조심스럽게 적었다.

이름의 자음 하나는 파르하드의 글자에 없었다. 그는 가장 가까운 글자를 쓰고 옆에 혀의 위치를 작은 글씨로 설명했다. 바르다나가 떠나기 전 발음을 세 번 듣고도 확신하지 못했다. 그래서 번역문에는 이름을 남기고 주석에는 ‘아린드라의 어머니, 말라바의 여왕’이라고 썼다.

밤에 파르하드의 어린 딸이 물었다.

“아들을 이기지 못한 여왕이 왜 중요한가요?”

그는 번역 중인 편지를 보여 주었다.

“진 뒤에 약속을 지켰으니까.”

딸은 그다음 장을 읽어 달라고 했다. 파르하드는 등잔에 기름을 더했다. 한 권의 책이 길을 건너갈 때마다 같은 문장이 먼저 읽히는 것은 아니었다.

번역이 끝나자 그는 원문과 번역본을 마주 놓고 누락된 장을 셌다. 바르다나에게 갚을 필사본에는 자기 주석을 모두 넣었고, 표지 안쪽에 원문을 산 값과 번역한 날짜를 적었다. 거래의 흔적도 책의 길에 속한다고 여겼다.

파르하드가 딸에게 읽어 주던 번역본은 다음 필사공의 손으로 넘어갔다. 사본이 거듭 베껴지는 동안 바르다나의 이름은 상품 장부에서 사라졌고, 파르하드의 글씨도 다른 서기관의 글씨로 바뀌었다. 왕조와 도시의 통치자가 바뀌어도 사람들은 판을 두었고, 지역마다 놀이의 이름과 말의 걸음을 조금씩 달리 적었다.

어떤 필사공은 무게 단위의 주석을 본문으로 옮겼고, 다른 이는 코끼리 그림을 자기 판의 말처럼 다시 그렸다. 원문과 다른 부분을 표시하던 줄은 장식 무늬로 오해되기도 했다. 그래도 여왕이 아들에게 떠날 자유를 주고 약속을 지킨 문장과 왕자가 인질 앞에서 멈춘 장면은 여러 사본에 함께 남았다.

그렇게 바뀌어 온 번역본 하나가 아홉 번째 세기 바그다드의 필사공 살마에게 이르렀다. 앞부분에는 샤트란지의 말 그림이 있었고, 뒤에는 인도 여왕의 이야기가 있었다. 책을 맡긴 귀족은 전투 부분만 새로 베끼라고 했다.

“왕자가 어떻게 포위를 풀었는지가 중요하오. 그 어머니가 편지를 썼다는 대목은 덜어도 좋겠지.”

살마는 주문대로 견본을 만들었다. 그런데 귀족이 돌아간 뒤 아린드라의 귀환 부분을 읽다가 손을 멈췄다. 어머니의 편지를 지우자 왕자는 집을 떠날 때부터 침입을 예상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가 망설인 시간도 사라졌다.

귀족이 준 종이로는 긴 이야기를 모두 옮길 수 없었다. 살마가 전투와 우물 위치를 먼저 베끼고 편지를 덜자, 아린드라가 왜 군량을 세고 적의 물통을 채웠는지 이어지지 않았다. 전술은 남았는데 선택의 까닭이 사라졌다.

살마의 아들 유수프는 낮에는 종이를 자르고 밤에는 놀이를 배웠다. 그는 판에서 신하를 내주고 왕을 구한 뒤 어머니에게 자랑했다.

“제가 이겼어요.”

“왜 그 말을 먼저 버렸니?”

“왕이 중요하니까요.”

살마는 종이 장수였던 남편의 마지막 장부를 떠올렸다. 강도에게 물건을 빼앗겼을 때 그는 견습생을 돌려보내고 남았다. 남편은 돌아오지 못했다. 장부에는 잃은 종이의 수만 남아 있었다.

돌아온 견습생은 남편이 수레를 버리고 자기를 먼저 달아나게 했다고 했다. 장부만 읽으면 종이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사람이 되었고, 증언을 들으면 한 사람을 보내기 위해 남은 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아들의 판을 다시 보았다.

“판에서는 그렇게 둘 수 있지.”

유수프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왜 달라졌는지 몰랐다.

살마는 두 사본을 만들었다. 귀족에게 줄 전술 발췌본과, 훼손된 부분을 표시하며 옮긴 긴 이야기였다. 긴 이야기에는 인질 앞에서 멈춘 왕자와 늙은 노인을 부축한 장면을 남겼다. 잃어버린 문장은 짐작해서 채우지 않고 빈 줄을 그었다.

귀족의 서기는 견본을 받고 편지 대목이 왜 각주에 남았는지 물었다.

“전투와 상관없는 부분이라고 하지 않았소?”

“그래서 본문에서는 덜었습니다. 다만 무엇을 덜었는지는 밝혀야 합니다.”

서기는 못마땅해했지만 약속한 품삯은 치렀다. 살마는 그 돈으로 긴 이야기의 실과 표지 천을 샀다.

돈이 부족해 종이가 끊겼을 때 유수프가 자기 연습지를 내밀었다.

“뒤는 깨끗해요.”

연습지 앞면에는 빵 다섯 개를 세 사람이 나누는 문제가 있었다. 살마는 글씨가 비치지 않는 방향으로 종이를 놓아 치료 기록 뒤에 붙였다. 그래도 등불에 들면 어린아이의 셈과 틀린 답이 뒤집혀 보였다.

“내 답이 틀렸는데요.”

“틀린 답도 이 종이가 어디서 왔는지 알려 준다.”

유수프는 자기 이름을 작게 적었다. 살마는 지우지 않았다.

살마는 그 책을 서쪽으로 가는 의사에게 팔았다. 값은 거의 종이값이었다. 의사는 상처를 치료하는 그림이 도움이 된다고 했다. 여왕의 이야기가 마음에 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금의 절반은 은화였고 절반은 약재였다. 살마는 약재를 이웃 산파에게 다시 팔아 실값을 갚았다. 책 한 권이 떠나는 데에는 읽는 사람뿐 아니라 종이 장수와 실 파는 사람, 짐을 나를 낙타의 몫도 필요했다.

떠나는 날 그가 물었다.

“어느 나라 이야기요? 이 이름들은 잘 모르겠소.”

살마는 원문의 서문을 가리켰다.

“말라바에서 왔다고 합니다. 실제로 누구였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제 손은 이 사본까지 닿을 뿐입니다.”

그녀는 책을 천으로 감쌌다. 여왕의 이름이 빠진 자리 옆에는, 살마가 지우지 않고 남긴 빈 줄과 손때가 그대로 있었다.

낙타가 일어서자 상자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유수프가 달려가 받치려 했지만 살마는 어깨를 잡아 세웠다. 짐꾼이 끈을 고쳐 매는 동안 모래가 천 표지에 얇게 붙었다.

책은 왕의 명령도 정복군의 깃발도 없이 다시 길을 떠났다. 치료 그림을 찾는 의사가 값을 치렀고, 이름을 모르는 필사공들이 빠진 자리를 표시했으며, 상인들이 젖지 않게 싸서 다음 도시에 넘겼다. 그 과정에서 문장은 닳고 말의 걸음은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