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라는 호칭
우리는 그를 돈키호테라고 부릅니다. 풍차를 향해 창을 들고 달려가는 사람. 마른 말 위에서 누구도 보지 못하는 거인과 싸우는 사람. 이름을 듣는 순간 얼굴보다 그 장면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런데 그 익숙한 이름은 어디에서 끊어 읽어야 할까요.
스페인어로는 ‘돈 키호테(Don Quijote)’입니다. 여기서 ‘돈’은 이름의 일부가 아니라 남성의 이름 앞에 붙이는 존칭입니다. 여성에게 쓰는 대응 호칭은 ‘도냐(doña)’입니다. 한국어의 ‘님’이나 ‘선생님’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지만, 역사와 사용법까지 같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실제 이름은 키호테였을까요.
그것도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키호테는 그가 기사로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정한 이름입니다. 작품 마지막에 밝히는 본명은 알론소 키하노(Alonso Quijano)입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이름에는 존칭과, 자신이 되고 싶었던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붙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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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만차의 이달고
‘돈 키호테 데 라만차(Don Quijote de la Mancha)’에서 ‘데 라만차’는 라만차 출신이라는 뜻입니다. 라만차는 스페인의 지역 이름입니다. 따라서 이 이름은 라만차 출신의 키호테라는 인물을 높여 부르는 형식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이름난 전쟁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원작 첫머리에 등장하는 인물은 약 오십 세의 이달고, 곧 하급 귀족입니다. 기사도 소설을 읽는 데 빠져 사냥과 재산 관리까지 소홀히 합니다. 책을 사려고 경작지 일부를 팔기도 합니다.
그가 읽었던 이야기 속에는 억울한 사람을 구하고, 악한 세력을 물리치며, 사랑하는 여인에게 영광을 바치는 편력기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런 이야기를 읽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자신이 그 기사가 되어 세상으로 나가려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본명조차 처음부터 확정적으로 소개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서술자는 그의 성을 키하다, 케사다, 키하나 등으로 흔들어 제시합니다. 마지막에 알론소 키하노라는 이름이 명시되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신상명세를 분명하게 설명하는 방식의 소설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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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드레의 이름
그는 먼저 말의 이름을 정하고, 이어 자신의 이름을 고민합니다. 자기 이름을 정하는 데 걸린 시간은 여드레였습니다. 그렇게 붙인 이름이 돈 키호테입니다.
이 대목은 우습습니다. 모험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름 때문에 여러 날을 보내는 셈이니까요. 그러나 이름을 붙이는 일에 그만큼 공을 들였다는 것은, 그에게 모험이 단순한 외출이 아니었다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온 이름으로 길을 나서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먼저 만들었습니다.
그가 마음에 품은 여인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알돈사 로렌소라는 시골 여성을 바탕으로, 그는 ‘둘시네아 델 토보소’라는 이상적인 귀부인의 이름을 만들어냅니다. 둘시네아를 처음부터 그와 사랑을 나누는 공주나 연인으로 생각하면 원작과 거리가 생깁니다. 실제 여성과 그가 마음속에서 높이 세운 여인은 구별해야 합니다.
기사의 이름과 사랑하는 여인의 이름을 갖추자, 그의 세계는 기사도 소설의 모습을 닮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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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차와 거인
풍차와 싸우는 유명한 장면은 1부 8장에 나옵니다. 키호테와 산초 앞에 서른에서 마흔 개쯤 되는 풍차가 나타납니다. 키호테는 그것을 거인으로 봅니다. 산초는 거인이 아니라 풍차이며, 팔처럼 보이는 것은 날개라고 설명합니다.
경고는 소용이 없습니다. 키호테는 공격하고, 결국 풍차에 당합니다.
그다음이 더 흥미롭습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봤다고 간단히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방해하는 마법사가 승리의 영광을 빼앗으려고 거인을 풍차로 바꿨다고 설명합니다.
우리는 흔히 이 장면에서 무모한 용기나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이상을 떠올립니다. 그렇게 읽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원문에는 믿음과 다른 증거를 마주했을 때,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 설명을 바꾸는 모습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그가 보았던 거인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거인이 있었다는 믿음은 남았습니다.
산초가 없었다면 독자도 그 세계 안에 조금 더 오래 머물렀을지 모릅니다. 거인이라는 말 옆에 풍차라는 말을 놓는 사람이 있어서, 우리는 같은 장면을 두 가지 눈으로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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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이야기를 만난 사람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쓴 『돈 키호테』의 1부는 1605년, 2부는 1615년에 출판됐습니다. 두 책 사이에는 십 년이 있습니다.
그사이인 1614년, 아베야네다라는 이름으로 다른 작가가 쓴 속편이 먼저 나왔습니다. 세르반테스의 2부는 이 다른 속편에도 반응합니다. 작품 바깥에서 벌어진 출판의 문제가 작품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더 놀라운 장치도 있습니다. 2부에서 키호테와 산초가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는 이미 두 사람의 모험을 기록한 1부를 읽은 이들이 있습니다.
독자가 읽었던 책이 소설 속에서도 읽힙니다. 주인공들은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과 마주합니다. 스스로 이름을 만든 사람이,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자기 이름과 만나게 되는 셈입니다.
이런 구조를 보면 『돈 키호테』를 풍차에 덤빈 우스운 기사의 이야기로만 기억하기는 어렵습니다. 현실을 이야기로 바꾸는 사람과, 이야기를 읽고 현실의 사람을 대하는 이들이 한 작품 안에서 서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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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론소 키하노
작품 마지막에 주인공은 자신이 돈 키호테였지만 이제는 알론소 키하노라고 밝힙니다. 이때의 이름에는 ‘선량한 사람’이라는 뜻의 ‘엘 부에노(el Bueno)’도 붙습니다.
이 결말을 꿈에서 깨어난 일로 읽을 수도 있고, 스스로 만든 기사라는 정체성을 내려놓는 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이름은 작품의 시작과 마지막을 잇고 있습니다.
‘돈’이라는 호칭을 떼어내면 키호테가 남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마저 스스로 지은 것이었습니다. 그 뒤에는 라만차에서 책을 읽던 알론소 키하노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를 알론소 키하노보다 돈 키호테로 더 오래 기억합니다.
한 사람이 살았던 이름보다, 자신이 되고 싶어 했던 이름이 더 멀리 남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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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FundéuRAE — don, señor: 스페인어 존칭의 사용 https://www.fundeu.es/consulta/tratamiento-abreviatura-15/
세르반테스 연구소 — 1부 1장: 신분과 독서, 이름의 유래 https://cvc.cervantes.es/literatura/clasicos/quijote/edicion/parte1/cap01/
세르반테스 연구소 — 1부 1장 후반: 기사 이름과 둘시네아 https://cvc.cervantes.es/literatura/clasicos/quijote/edicion/parte1/cap01/cap01_02.htm
세르반테스 연구소 — 1부 8장: 풍차의 모험 https://cvc.cervantes.es/literatura/clasicos/quijote/edicion/parte1/cap08/default.htm
스페인 국립도서관 — 1615년의 2부와 아베야네다의 속편 https://cervantes.bne.es/es/exposicion/obras/segunda-parte-ingenioso-caballero-don-quijote-mancha
세르반테스 가상도서관 — Cervantes y Don Quijote https://www.cervantesvirtual.com/obra-visor/cervantes-y-don-quijote-0/html/ffcf21ae-82b1-11df-acc7-002185ce6064_1.html
세르반테스 연구소 — 2부 74장 후반: 알론소 키하노 https://cvc.cervantes.es/literatura/clasicos/quijote/edicion/parte2/cap74/cap74_0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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